[골목의 재발견17 중앙시장]
1905년 경부선 개통때 생겨나
중부권 최대… 전국 3번째 규모
식료품·잡화·혼수 등 총 망라
오랜 기간 손님들 식구같아…
시설 현대화로 장보기 편해요

재래시장의 매력은 정(情)이다. 파는 물건에 덤을 얹어주거나, 값을 덜어내는 '사람의 정'을 재래시장이 아니라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조금만 더 담아주세요"라는 애교에 여지없이 물건이 불어나는 일은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찾을 수 없는 마술(?)이다. "남는 게 없어요"라고 볼멘소리를 하다가도 끝내 더 담아주는 정은 오랜 시절 대전역 앞을 지켜온 중앙시장에 한가득 쌓여 있었다.

중앙시장은 한 세기 전인 1905년 경부선 철도, 대전역이 개통되면서 처음 움텄다. 역에서 원동과 인동 방향으로 길이 뚫리면서 길 양쪽에 시장이 세워졌고, 사람들이 필요한 물품을 거래하면서 규모를 갖추기 시작했단다.

남북 방향으로는 중앙로에서 대흥로까지, 동서로는 대전역에서 대전천에 이르기까지 펼쳐진 중앙시장은 전국에서 3번째, 중부권에서는 최대로 꼽히는 큰 규모를 자랑한다.

시장 면적이 넓은 만큼 기본적인 식료품부터 옷, 생활용품, 잡화, 혼수품 등 온갖 물건이 망라돼 있다.

워낙 많은 물건들을 파는 곳이다 보니 난잡하지 않을까 생각하기 쉽지만, 중앙시장의 전체적인 인상은 의외로 '깨끗하다'였다. LED 조명을 품은 높다란 아케이드 지붕과 전광판, 색색의 깔끔한 간판들이 줄지어 방문객을 반긴다.

물론 그 안의 사람들과 정은 과거나 지금이나 깊고 후하다. 겉모습은 현대화 됐지만 사람들, 100여년 시간의 자취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 원동력은 각 상점들이 갖춘 역사다. 오랜 기간 손님들과 호흡하는 과정에서 내 이웃, 내 친구라는 인식들이 내면 깊이 새겨진 탓이다. 시장 내 '대전 도매시장'에 인접한 평화완구사가 특히 그랬다.
60년의 역사를 지닌 이곳은 현재 이주환(63) 씨가 대를 이어 운영하는 곳이다. "옛날에는 대전에 장난감을 파는 곳이 이 곳 하나 뿐이었어요. 예전에 장난감을 샀던 할아버지들이 손자들을 이끌고 와 과거를 추억하면 저도 가슴이 찡해집니다."

먹자골목과 생선·과일골목 사이에 자리를 잡은 박정식(66) 씨도 30년 째 이곳 중앙시장에서 칼을 갈며 단골들을 마주하고 있다. "30년 넘게 일하며 남은 건 뭐니 뭐니해도 단골입니다. 잊지 않고 찾아주는 분들이 있는데, 손님에 대한 정이 안 생길 수 없어요." 시장통의 빼놓을 수 없는 요소 '먹자골목'은 70년 전통의 '함경도집'을 필두로, '전라도집', '서울치킨' 등 전국 음식의 집결지(?)기도 한데, 음식 맛은 물론 훈훈함으로도 중앙시장은 물론 전국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는 곳이다.

36년 경력의 서울치킨 최도환(72) 씨가 상자에 담아주는 닭은 보통 시중에서 파는 치킨에 반 마리 분량은 더해지는 듯했다. 물론 중앙시장이 옛 사람, 옛 것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과거의 향취에 새로운 것이 더해져 지금의 중앙시장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중교 인근에 들어선 최신식 패션마트, 대규모 주차장시설을 겸비한 중앙쇼핑타워는 이런 '새 바람'을 대표한다.
생선·과일골목 말미에는 고가의 '에스프레소 커피 머신'을 비치해 두고 커피와 과일주스 등을 파는 김보예(31) 씨도 있었다.

바로 옆 호떡집과의 제휴(?)로 '커피&호떡' 세트 메뉴를 사면 가격 할인도 해주는 선진 판매전략도 구사 중이다.

당찬 패기로 장사에 나선지 7개월이 됐다는 김 씨는 "중앙시장이 역사가 깊다고 믹스커피만 팔고 먹는 곳일 수 있겠어요"라며 "중앙시장의 장점은 역사라는 토대에 새로운 것이 더해져 더욱 발전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준 기자 kyj85@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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