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의 월요편지]배재대 석좌교수

지난주에는 여행문화센터 ‘산책’에서 주관하는 인문학콘서트에 참여해서 강연을 했습니다. 주제가 ‘소설속의 사랑’이여서 마음에 들었지만, 막상 강연을 하려니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모든 사람이 사랑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고, 또 사랑의 모양이 요모조모 다양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사랑이야기는 자칫 진부하고 식상하여 클리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소설가나 철학자들은 ‘사랑’을 부정적으로 묘사합니다. 철학자 강신주는 사랑은 본질적으로 불륜(不倫)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아내와 남편은 우리에게 배우자일 뿐 결코 애인이 될 수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결혼제도를 비판하는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모든 욕구에 대해 성적으로 또는 감정적으로 평생의 해결사가 되어 줄 수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불륜예찬’의 저자 독일의 철학자 프란츠 베츠는 ‘사랑이란 호르몬에 의한 화학반응이다’고 단언합니다.

물론 사랑에 대해 예찬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요. 시인 고은은 ‘사랑이란 말은 참고 참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한마디씩 나오는 것이며, 사랑은 ‘두 개의 나’가 최고의 형태로 만나는 행위로서 나를 없애고 타를 확장시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스탕달은 ‘정열적으로 사랑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절반, 그것도 아름다운 쪽의 절반을 잃은 것과 같다’고 했고, 빅토르 위고는 ‘인생에서 최고의 행복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을 때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범주에는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남녀의 사랑은 에로스적 사랑이고, 친구 사이의 우정은 필리아, 조건 없는 희생적 사랑을 아가페라고 구분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남녀의 사랑에는 에로스만이 아니라 필리아와 아가페적 요소가 혼재해 있습니다. 당연히 남녀의 사랑은 에로틱한 사랑, 정념어린 사랑이 주요한 요소지만 친구나 아이에 대한 사랑 같은 필리아도 작용하고, 조건 없는 참다운 사랑이라는 아가페적 사랑도 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주장으로 예일대 심리학 교수인 스턴버그의 ‘사랑의 삼각형 이론’을 들 수가 있습니다. 스턴버그는 사랑은 열정과 친밀감과 헌신이 모아져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개념의 차이는 있지만 일단 열정은 에로스, 친밀감은 필리아, 헌신은 아가페로 대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남녀의 만남도 친구 같은 우정을 바탕으로 사랑을 이루고, 상대방의 육체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친밀감, 열정, 헌신, 하나만 갖는 사랑도 있을 수 있고 열정과 친밀감, 열정과 헌신 그리고 친밀감과 헌신의 사랑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스턴버그의 주장대로 세 가지 요소가 모두 결합되면 완벽한 사랑이 되겠지요. 그러나 이 세 요소를 갖춘 사랑을 처음 시작부터 평생 지속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21세기 새로운 삶의 방향성을 제시한 명저 ‘사랑에 관하여’를 남긴 프랑스 교육부장관 출신 뤽 페리 교수는 “연애감정은 3년밖에 가지 않는다, 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그 사랑을 어떻게 연애 초의 눈부신 약속들에도 뒤지지 않는 지속가능한 결합으로 변모시킬까”라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답은 오직 하나, 에로스, 필리아 그리고 아가페를 성공적으로 조화시키는 사랑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연애 감정에서 지성과 이성의 도움으로 공들여 구축한 사랑으로 넘어가라고 충고합니다. 평생 한 사람과 살아가려면 정념보다는 지성이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이 신선한 대안으로 여겨지는 것은 비단 저뿐이 아닐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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