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의 월요편지]배재대 석좌교수

정부나 기업에서 혁신을 강조합니다. 대부분 ‘혁신’에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있고 실행 방향이 탁 트여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혁신과정을 논의하다보면 흔히 ‘더듬다’라는 단어가 연관어로 빈번히 나와 당황하게 됩니다. ‘더듬다’의 사전적 정의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을 손으로 이리저리 만져 보며 찾다’입니다. 마치 어두운 방에서 문고리를 잡으려고 더듬거리는 모습을 떠올리게 되지만 혁신이란 문제와 결부시킬 때는 ‘해결 불가능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과정입니다. 그러다보니 혁신을 거론할 때 계속 이 단어가 연관어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뜻밖에도 특수상대성이론을 만들어 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역시 “일을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더듬는다고 답하겠다”고 표현했습니다. 모든 일은, 쉽지 않을 뿐더러 간단하지 않고 가시적인 적용방법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듬거리면서, 확인하면서, 조심스럽게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들이 실현하려고 하는 혁신은 즉각적으로 조치할 수 있는 내용이 잘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아인슈타인까지도 ‘더듬는다’고 표현하지 않았을까요?

‘더듬다’는 어두운 곳에서 무엇을 찾는 일일 수도 있고, 조심스럽게 일을 처리하는 태도일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이 서툴러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을 설명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장님이 나무난간을 만지면서 느낌으로 길을 찾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난간의 나무 가로대와 콘크리트 기둥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겠지요. 여기서 느껴지는 것은 장인(匠人)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이 아니라 감각이나 촉각으로 느끼는 더듬거리는 것과 흡사합니다.

유진 S. 퍼거슨은 ‘엔지니어링과 마음의 눈’이라는 책에서 엔지니어가 구조물을 설계하거나 기계조립을 할 때는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보다 감각에 더 많이 의지한다고 했습니다. 즉 ‘기계를 설치할 때는 시각적인 것 외에도 촉각적이고 근육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고 표현함으로써, 이런 모든 작업은 ‘손 지식’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손지식이란 책에 쓰여진 지식이나 어떤 청사진에 나와 있는 그림도 아니고 오로지 손이나 몸을 써서 직접 체험하면서 습득하는 것입니다. 어떤 ‘매듭’을 느낄 때도 그것을 언어적 방법으로 접근하면 풀 수가 없고 몸의 느낌으로서만 실마리를 풀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더듬는 것은 사물의 표피를 만지는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 문제를 깊게 파고 들어가는 작업인 듯합니다.

더듬는다는 말을 ‘신중하게 하나하나를 확인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면, 중국 사서의 하나인 ‘대학’에 나오는 말인 ‘격물치지(格物致知)’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는 모든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앎에 이른다는 뜻으로, 끝없는 탐구의 자세로 창의와 아이디어를 접목시킬 수 있기 때문에 기업에서도 활용하는 좌우명이며 기업정신이기도 합니다. 이병철 회장을 비롯한 이건희, 이재용 회장으로 이어지는 삼성가문과 삼성에서 오래 근무한 윤종용 회장의 좌우명이기도 하여서 그분들의 사무실에는 ‘격물치지’를 액자로 만들어 걸어 놓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더듬다’로 시작해 격물치지의 자세로 일에 몰입하면 창의적인 결과가 나오겠지요.

격물치지의 글자를 하나하나 풀어 잘 해석한 것으로는 한국창의력교육학회 회장인 전경원 교수의 강의록을 꼽을 수 있습니다. 전 교수는 격물치지란 어떤 사물의 원리를 알고자 한다면 그 사물에 다가가서 내가 가진 지식과 지혜를 총동원하여 극한 깊이로 파고들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더듬다’로 시작하여 중국 고전 ‘대학’에 나오는 ‘격물치지’로 마무리 한다면 혁신의 문은 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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