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경철수 경제부장

최근 한 종편 채널에서 인기리에 종영된 ‘디데이’란 드라마가 있다. 서울에 진도 6이라는 강진이 발생한 가상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국가 대재난상황에서 의협심이 강한 의료진과 소방관들이 자신을 돌보지 않고 어려움에 처한 시민들을 구조·구호활동을 벌이는 일화를 다룬 드라마다. 수도 서울이 지진으로 폐허가 된 상황에서 헌신적인 의료진의 ‘DMAT(재난의료팀)’활동과 소방관들의 구호활동이 이어지면서 서울은 점차 안정을 되찾게 된다.

그런데 바로 이 국가 대재난상황에서도 건설사를 운영하는 ‘재벌3세’ 특임장관 구자혁(차인표 분)의 복잡한 심경이 오버랩되면서 시청자들의 공분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 있다. 국가 비상상황을 책임진 특임장관 이전에 한 건설사 대표였던 사업가 구자혁에겐 내진설계가 하나도 돼 있지 않아 폐허가 된 수도 서울의 재건 과정에서 벌어들일 어마어마한 사적 이익은 빛나는 내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소방관들에게 화재진압 보다는 인명구조에 더 신경을 쓰도록 종용한다.

그러나 그의 꼼수는 언론에 들통이 나면서 끝내 꿈을 이루지는 못한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지고 특임장관과 국회의원직을 내려 놓고 떠나는 자리에서 구자혁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국가 대재난 속에서 사흘을 견딜 수 있는 비상식량과 혁신적인 비상의료시스템, 그리고 내진설계 등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만 일어날 것 같은 이 같은 일들이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최근 이슬람 무장 급진세력 IS의 동시다발적인 프랑스 테러를 통해서 보듯 우리나라도 더 이상 테러 대상 국가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우려와 함께 말이다.

이처럼 모든 일에 대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만사불여튼튼(萬事不如-튼튼)’이란 말이 새삼 강조되고 있는 이 때에 우리 충북도의 현실은 어떨까. 충북은 얼마전 국민안전처의 지역안전등급 평가 자연재해 분야 등에서 4등급을 받아들어 상당히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전란과 국가재난 상황에서 주민들이 대피해 잠시 머물게 될 도민대피시설 또한 상당히 취약한 것으로 파악됐다.

충북도가 도내 주민대피시설 753곳의 관리실태를 점검한 결과, 46곳이 평소 문이 잠겨 있어 비상상황에 출입이 어려운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별로는 증평이 15곳으로 가장 많고 청주 13곳, 제천 11곳, 영동 5곳, 보은·단양 각 1곳 씩이다. 화생방 위험 상황에 대비한 민방위 대원용 방독면 확보율도 전체 대원수(9만 3000여명)에 크게 못 미치는 57.8%(5만 3801개)에 그쳤다.

이는 앞서 지난해 5월 지역정책연구원이 실시한 ‘GIS 공간분석 기반 청주지역 대피소 분포 특성 및 위치 적합성 평가’에서도 이미 한 차례 주민대피시설이 상당히 미흡한 것으로 조사된 바 있어 그간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당시 정책연구원은 청주지역 총 368개 대피소에 대한 분포도를 조사한 결과 북문로 1·2·3가, 서문동, 문화동, 남문로, 복대동, 사창동, 분평동 등 도심지역에 너무 집중돼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는 주민대피소가 적절히 분포돼 있지 않을 경우 긴급 상황 발생 시 주민의 이동속도와 도달시간을 고려할 때 자칫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실제 긴급상황 발생 시 노약자(70.84㎢), 아동(98.26㎢), 일반성인(122.38㎢)의 대피 가능 범위를 고려할 때 청주시 전체면적(940.29㎢)의 대피 가능 인구범위는 13.2%에 불과한 상황이다. 충북도는 도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을 더 이상 방관해선 안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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