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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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 愼言牌와 承命牌
甲子士禍(33)



"내 어머님께서 장흥부부인에게 무슨 유언을 남기셨는지 빨리 알고 싶소."

"장흥부부인은 만일 함부로 폐비의 유언을 누설하였다가 인수대비의 귀에라도 말이 들어가는 날이면 죽고 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대왕대비 사후(死後)에나 전하께 아뢰려고 하지마는 폐비의 참혹한 죽음을 목격한 탓으로 심화(心火)가 지병(持病)이 된 데다 노령으로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 지 몰라 생전에 폐비의 유언을 전하께 전하지 못하고 죽을까 몹시 애를 태우고 있다고 하옵니다."

"하마터면 내가 어머님의 한(恨)맺힌 유언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모르고 지나칠 뻔하였소. 내 어젯밤에 경의 집에 미행하여 경을 만난 것이 어머님 혼령의 인도가 계셨던 때문이 아닌가 여겨지오."

"전하, 장흥부부인을 속히 불러 보시오소서."

"그래야겠소."

왕은 내시 김자원을 불러 장흥부부인 신씨를 그날 밤으로 입궐시키라고 분부하였다.

임사홍은 계획한 대로 일이 척척 들어맞는 것을 보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는 이미 개선장군처럼 속마음이 우쭐해져 있었다. 아직은 옛날의 자급(資級)에 해당하는 실직을 얻지 못하였지만 봉군(封君)은 그의 권토중래를 뜻하는 것이었다.

대군 이외의 군호(君號)는 임금의 서자, 국구(임금의 장인), 종친 훈신(勳臣)으로 이품(二品) 이상이라야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임사홍이 지금 속으로 벼르고 있는 것은 자기를 오래도록 금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 정적들에게 보복을 하려는 것이었다.

"과인이 폐비 당시의 시정기를 읽어 보니 폐비의 죄가 시앗들에 대한 질투가 전부라는 생각이 들었소. 경의 말대로 누구누구가 폐비의 없는 죄를 날조하고, 있는 죄를 침소봉대하였다면 그 기록이 남아 있어야 될 것이 아니오?"

왕이 그것이 의문이라는 듯 다시 묻고 있었다.

"신이 기억하기로는 폐비할 당시는 물론이옵고 폐비 후에도 폐비의 죄가 정말 폐비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큰 것인가에 대하여 조신들이 의심하고 시비가 그치지 않았기 때문에 인수대비께서 폐비 사유(事由)라는 이름으로 친필 언문서를 내리셨는데 당시 승지이던 채수(蔡壽)가 폐비한다는 교서(敎書)만 남아 있으면 후세 사람들이 폐비한 사유를 모를 것이므로 대왕대비의 언문서를 번역하여 사책(史冊)에 올려 두는 것이 좋겠다고 아뢰어 성종대왕께서 한문으로 번역하라 명하시고 채수가 다른 사람과 함께 번역하여 당시의 시정기와 사초(史草)에 기록되었던 것으로 아옵니다."

"그렇다면 대왕대비의 언문서를 번역하여 실린 대목을 한번 찾아보도록 하오."

왕은 안상 위에 펴 놓고 읽다 만 시정기를 집어 임사홍에게 건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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