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규 광림한의원 원장

脈만으로는 완벽한 진단 어려워

한방의 여러 분야 중에서 아직까지도 일반인들이 신비롭게 여기고 한의사들의 전문적인 권한(?)을 인정해 주는 분야가 아마 진맥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실 한의사로서도 평생을 수련해 나가야 하는 어려운 분야가 아마 진맥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한의사들이 맥을 본다는 일이 어찌 진행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 환자에 대해서 알아내게 되는지에 대해서 일반인들이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고 본다.

지금 한의원에서 사용되는 맥법(脈法)은 손목의 요골동맥(撓骨動脈)만을 잡아서 전신(全身)의 상태를 알아내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어느 한의사는 손목의 동맥에서 질병상태를 알아내는 것은 마치 어부가 물길이 좁아지는 길목에 망을 던져서 물고기를 잡아내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조선시대의 대학자이신 정약용 선생은 맥만을 잡아서 사람의 몸 상태를 알아 내고자 하는 것은 마치 한강의 하구에서 남한강과 북한강, 더 나아가서는 수많은 지류까지를 일일이 다 알아 내고자 하는 허황된 일이라고 말했다. 다산 선생이 말하고자 하는 본뜻은 손목의 동맥이 전신의 기혈 흐름을 어느 정도 반영하며 수련 여부에 따라서는 자세한 정도의 기혈(氣血) 상태를 알 수 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지엽적인 문제까지 그곳에 모두 반영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맥(脈)을 통해 한의사가 알 수 있는 것은 지금 환자의 어느 부위가 이상이 있으며, 그 부위가 더운지, 찬지, 허(虛)한지, 실(實)한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지금의 서양의학에서 처럼 위장(胃腸)의 어느 부위에 몇 ㎝되는 염증이 있는지, 궤양이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림을 예로 든다면 한의사가 환자의 맥을 보는 단계는 그림의 기운을 감상하는 수묵화의 감상 단계라고 한다면, 서양 의학의 정확한 기기(機器) 진단들은 하나하나를 돋보기로 뜯어보는 감정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차이를 잘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물론 환자들의 입장에서는 한의사가 다른 아무 질문도 없이 맥만을 보고 자신의 어느 부위가 이상이 있는지를 맞춘다면 그 한의사에게 매우 많은 신뢰가 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맥을 통해 환자의 몸 상태를 알아내는 정도는 그 한의사의 수련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맥만을 가지고 환자의 모든 상태를 속속들이 알아 내는 능력을 가진 한의사라 하더라도 환자에게 여러 가지를 묻거나 환자의 여기저기를 살펴서 그 환자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면 치료에 더욱 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한의사들이 맥에만 의존하지 않듯이 한방진료를 받는 일반인들도 보다 많은 정보를 한의사에게 제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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