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홍순철 충북본사 정치부장

바야흐로 총선의 계절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이미 공천과 관련한 계파 간 힘 겨루기에 들어간 지 오래고 다양한 '셈법' 따지기에 바쁘다. 정치권의 이런 힘 겨루기와 갈등 속에 '소이부답(笑而不答)'이 주목을 받고있다. ‘소이부답’은 중국의 유명한 시인 이백(李白)의 '산중문답(山中問答)'에 나오는 표현으로 '답하지 않고 그저 웃는다'는 뜻이다.

최근 빚어진 ‘소이부답’을 보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서로 맞붙으면 어떻겠냐는 주변의 말에 두 사람 다 '소이부답' 반응을 보여 서로가 껄끄러운 관계임을 증명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강용석 변호사 간의 싸움도 같은 경우다. 끊임없이 제기되는 박시장 아들의 병역의혹에 이제 박 시장은 ‘소이부답’으로 응대한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결국 새누리당 원내대표 직에서 물러난 유승민 의원의 경우도 여기에 해당한다. 유 의원 역시 입은 있지만 현재로선 아무 말도 못하는 ‘소이부답’이다. 이 같이 정치권에서 ‘소이부답’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이 ‘소이부답’을 즐겨 사용한 이는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로 알려져 있다. 자민련은 지난 2000년 총선에서 17석으로 줄어드는 참패를 당했다. 지난 총선에서 40여석을 차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 JP는 "정치에는 시련이 있기 마련이고 의원 숫자가 적다고 할 일을 못하느냐"며 재기를 모색했다. 그러나 국회 원내 교섭단체(정족수 20석) 미달 상태에서 내부의 동요와 외부의 유혹은 끊이지 않았다.

자민련의 위상을 교섭단체로 바꾸려면 국회법 개정이 필요했지만 한나라당은 자민련을 외면하고 무시했다. 이후 시간이 흘러 2002년 대선의 해가 됐다.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대세론'을 앞세워 두번째 도전에 나섰고 민주당은 노무현 후보가 이른바 '노풍(盧風)'을 타고 후보가 됐다.

선거 막판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는 노 후보에게 뒤지고 있었고 한나라당 일각에선 JP를 잡아야 승리한다는 대책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결국 한나라당은 JP와의 연대를 외면했고 결국 이 후보는 노 후보에게 패했다. 노 후보와 이 후보의 표 차이는 57만표였다. 이회창 후보가 JP와 연합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분석한 사람도 많았다. 1997년 대선에서 DJ가 JP손을 잡은 ‘DJP연대’로 인해 충청 표가 몰린 덕분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상황이였을 것이라는 것이다. JP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소이부답'으로 응대했다. 역사에서 어떤 가정(假定)을 하는 일은 의미 없는 일이라는 뜻이었다. ‘소이부답’이 사용될 때 항상 인용되는 유명한 일화다.

정치권은 말로 시작해 말로 끝낸다. 그만큼 말의 의미가 절대적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정치권에서 말을 아낀다는 ‘소이부답’은 더 소중하다. 정치권에서 ‘소이부답’은 무언(無言)의 항쟁이자 하나의 ‘비상구’가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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