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전인준 음성여자중학교 교사

며칠 전에 교실에 들어갔더니 어떤 아이가 "선생님, 국어같이 생겼어요"라고 말한다. 그러자 몇몇이 또 옆에서 웅성웅성 동의까지 하는 것이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아이들은 그럴듯한 말들을 갖다 붙이며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런데 정작 내 마음은 선뜻 반가움보다 살짝 거슬리는 걸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감춰야 했다.

세상을 삐딱하게 보고 딴지거는 것이 지성인인 양 생각하던 젊은 시절에 '~답다'라는 말에 반감을 가졌었다. 왜 꼭 ○○다워야 하는 걸까? 그러면 모두 똑같아져서 답답할 거라고 생각했다. 여자답다는 말이 싫어서 중성적인 외모를 선호했고 교사답다는 평가가 싫어서 모임에 갈 때는 화려하게 꾸미기도 했다. 또 나중에는 아줌마스럽지 않으려고 신경을 썼다. 여자답다, 교사답다, 아줌마같다 라는 말에는 뭔가 개운치 않은 뉘앙스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이렇게 나름 애쓰며 살았는데, '국어같이 생겼다니….’ 어찌 고맙고 반가웠겠는가!

수업을 마치고 곰곰 생각해보니 같은 일을 20년 이상 하고, 같은 이름으로 20년 이상 불리면 얼굴이, 모습이 그렇게 될 수도 있겠구나 싶다. 이름에도 중력이 있어 우리를 그 이름으로 끌어당기나 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에게 붙여진 이름들에 맞게 살아가게 되는가 보다. 이름에 어울리는 옷을 사고 이름에 따른 생활 패턴을 갖게 되고 이름이 필요로 하는 공부와 업무를 하고 남들이 이름에 기대하는 말과 행동을 하다보면 시나브로 이름과 닮아가는 것이다. 담벼락에 쌓인 눈더미가 봄볕에 사그라들듯이….

이제는 이름의 중력을 받아들여야겠다. 어차피 이름이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거라면 좀 더 당당하고 멋지게 그 이름에 값해야겠다. 교사답게, 좋은 교사답게, 교사에게 기대하는 능력과 품성을 지닌 제대로의 선생님으로 불려야겠다. 아줌마답게, 가정과 나라를 지키는 아줌마임을 자랑스럽게 여겨야겠다. 생각해보라! 아줌마가 없으면 우리 가정과 나라는 누가 지키겠는가? 군인도 경찰도 하지 못하는 일을 아줌마라는 이름들이 하고 있다. 가정살림은 물론 육아와 자녀교육과 인구문제 해결까지 모두가 아줌마의 힘인 것이다.

이름은 이렇게 내 안에 오뚝이의 중심 추처럼 나를 나답게 하고 내 삶의 길에서 크게 어긋나지 못하게 붙들어 주는 중력으로 작용한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인생의 중반부에 들어 진로에 대해 고민하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10년 뒤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20년 뒤의 삶을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어떻게 사는 게 내가 원하는 삶인가?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하고 Well Being(웰빙)에 이어 Well Die(웰다이)를 맞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등등.

꽃중년으로서 앞으로의 진로 고민을 하다 보니 자석처럼 나를 이끄는 '이름의 중력'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굳게 마음먹고 선택한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그 길을 걷고 있기도 하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초자연적인 중력에 의해 무언가와 만나고 헤어지는데, 이런 것들이 바로 이름이 가진 중력이 아닐까 한다.

내게 붙여진 이름의 중력을 벗어날 수 없다면 멋지게 그 이름다워지는 것도 삶의 한 방법이리라. 그리고 나를 이끄는 이름이 있다면 그 이름에 슬쩍 끌려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삶이란 그렇게 서로 끌고 끌리며 끈끈하게 사람답게 사는 것이리라.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