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서산 가뭄현장
단수시간 전 회식 끝내고
빨래 다른 곳서 해오기도
물부족에 마늘파종 곤란
내년 쌀농사 어떻게 할지

▲ 충남 서부지역에 최악의 가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4일 보령호 상류 지역인 충남 보령시 미산면 도화담리의 호수가 바닥을 드러내 푸른 들판을 연상케 하고 있다. 가운데 파손된 콘크리트 구조물은 댐이 완공되면서 수몰됐던 다리의 모습이다. 보령=허만진 기자 hmj1985@cctoday.co.kr
얼마 전 서산의 한 아파트에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졌다. 2000여세대인 이 아파트는 40여년만의 극심한 가뭄으로 급수량이 70%로 줄면서 시간을 정해 자체적으로 단수를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입주민들이 단수 시간을 피해 한꺼번에 많은 물을 쓰면서 배수구 용량을 초과, 분수처럼 역류하는 사고가 났다.

이 일이 있은 후 입주민들은 부실시공 등의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같은 시간대 너무 많은 물을 쓰면서 벌어진 해프닝으로 끝났다. ▶관련기사 2·15면

이처럼 서산지역 일부 아파트는 물 절약을 위해 자발적으로 단수를 하면서 입주민들의 불편이 크다. 유모(47) 씨는 “우리 아파트는 오전과 오후로 나눠 단수를 하고 있는데, 회식이라도 하고 늦게 들어가는 날이면 씻는 것은 고사하고 용변을 해결하는데도 어려움이 있다”며 “회식도 가급적이면 단수시간 전에 끝내거나 자제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가뭄이 지속되면서 생활풍속도도 바뀌고 있다. 일주일에 두세번 하던 빨래를 한 번에 몰아서 한다거나 아예 지하수가 나오는 시골집에 가서 빨래를 해오는 시민들도 늘고 있다. 또 세차를 하지 않아 먼지를 뒤집어 쓴 차량도 많다.

시내에서 셀프세차장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눈에 띄게 이용객들이 줄어들어 매출도 절반 이하로 떨어진 상태”라며 “오히려 차가 깨끗한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만큼 시민의식도 바뀌어 지는 것 같다”고 전했다.

본격적인 김장철을 앞두고 각 봉사단체의 발걸음도 무겁다. 배추와 무 등 각종 김장 재료를 씻기 위해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지만 올해는 물 확보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예년 같으면 상수돗물 사용했는데 올해에는 지하수를 구해야 할 처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음용수 기준에 맞는 지하수를 찾아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한 봉사단체 관계자는 “예년 같으면 김장재료를 확보하는 데 신경이 쓰였는데 올해에는 물까지 구해야 하는 걱정까지 더 하게 됐다”며 “회원들과 함께 해결 방안을 찾아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농민들은 내년 농사 걱정이 앞선다. 서산시 인지면에 있는 풍전저수지의 저수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졌다. 262만t의 농업용수를 저장할 수 있는 이 저수지의 저수율은 25만t에 불과하다. 현재 서산지역 16개 저수지의 평균 저수율은 지난해 절반 수준인 32%에 그치는 실정이다. 농민 박모(65) 씨는 “6쪽마늘을 파종할 시기인데, 지금도 물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가뭄이 지속될 경우 밭농사도 문제지만 물이 많이 필요한 쌀농사를 지을 수 있을 지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한국수자원공사 서산권관리단은 아파트와 가정으로 들어가는 밸브 2만 2000여개의 수압을 조정, 봉인했다. 만약 이를 훼손할 경우 관련 조례에 따라 과태료를 부과키로 하고, 수시로 점검하고 있다. 서산시는 종합운동장 내 수영장, 샤워장과 함께 공원 등에 있는 공공급수대 22곳을 잠정폐쇄했다.

시 관계자는 “제한급수가 시작되면서 시민들이 불만을 표시하는 항의 전화가 많았으나 이제는 거의 없다”며 “시민들의 적극적인 물 절약 동참으로 우리시는 추가적인 제한급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산=박계교 기자 antisofa@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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