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아침편지]염홍철 배재대 석좌교수

철학자 니체는 살아있는 동안 학계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지만 20세기 이후 지식인들은 니체가 프로이트나 마르크스와 함께 근대 철학을 뛰어 넘은 위대한 사상가라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니체를 예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본의 사이토 다카시 교수는 내 인생에 힘이 되어 준 니체의 말을 ‘곁에 두고 읽는 니체’라는 책으로 펴내면서 ‘20세기 철학계는 물론 문학·예술계까지 깊은 울림을 남겼다’고 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니체에게 삶을 배웠으며, 니체처럼 살고자 하는 철학자’를 자임하는 이진우 교수는 ‘니체의 인생강의’ 등 많은 논문을 발표했고, 민음사의 ‘니체가 뒤흔든 철학 100년’을 비롯하여, 수많은 저서들이 출판되었으며 도서출판 책세상도, 무려 1만여 페이지에 달하는 21권의 니체전집을 펴냈습니다. 이쯤 되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니체의 학문적 비중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게 니체의 저작을 많이 읽는 이유는 이진우 교수도 지적한 것처럼 ‘가장 절망적인 삶을 살았지만 누구보다 삶을 사랑했던 니체의 철학을 통해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하고 운명을 사랑하는 법’을 전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니체는 프로이트, 마르크스와 함께 ‘의심학파’로서 기득권 세력, 모든 가치관, 사람들이 신성시하고 믿어 왔던 모든 것에 대해 반기를 들었기 때문에 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선언은 130년간 종교·철학계의 화두입니다.

21세기는 종교적 관점에서 세속화시대입니다. 세속화는 신과 같은 초월적 가치에서 물질적 가치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현대인에 영합할 수 있는 마력을 가진 것은 분명합니다. 저는 니체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문외한이기 때문에 범위를 좁혀 니체가 말하는 ‘신의 죽음’에 대해서만 탐구해 보았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비롯하여 ‘선악의 저편’, ‘아침놀’ 등을 읽어보았는데 읽을수록 누가 신을 죽일 수 있고, 왜 죽여야 하는지가 명확하지가 않았습니다. 내용이 난해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체계가 없으며 앞뒤 모순되는 논리도 있습니다. 신은 죽었다고 하면서도 예수에 대해서는 콤플렉스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진우 교수의 논문을 보면 니체는 ‘서양 역사 중에 진정한 기독교인은 두 명이 있는데, 그게 바로 예수와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발작을 일으킨 뒤의 일이지만 한 지인에게 쓴 편지에 ‘신이 이 지상에 존재한다… 교황을 감옥에 보내고…’라는 구절이 있는데 편지의 서명은 자신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로 되어 있습니다. 자신과 예수를 혼동한 것입니다.

신은 죽었다고 주장하는 대표적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는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천상의 것들은 신의 영역에 속하지만, 대지의 것들은 인간이 적극적으로 풀어야 할 대상이다. 천상의 것들은 인간의 외부에 있지만, 대지의 것들은 인간의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과연 ‘신의 죽음’을 강조한 철학자의 말인가요? 결국 니체의 ‘신의 죽음’이라는 도발적 명제는 ‘허무주의 시대’의 새로운 가치창조를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은 사람이 죽이고 살릴 수 없는 존재입니다. 니체가 말하는 신은 실재가 아니라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려진 신, ‘사람을 속박하는’ 그런 종류의 신이 죽었다는 것이겠지요. 자연계의 모든 인과관계를 더듬어 올라가면 최종의 제1 원인은 신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신의 죽음을 기술한 니체의 책들은, 니체를 사랑한 어느 교수의 지적대로 이론서도 아니고, 엄밀한 의미의 사상서도 아닙니다. 아방가르드 철학자 니체가 강조하는 주장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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