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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선 금요시장에서 손녀는 계란빵을 사가지고 왔다. 따끈한 계란빵을 보자 왈칵 감긴 기억하나가 뜨겁게 떠올랐다. 반으로 나누자 노른자가 보름달 처럼 익어있다. 계란빵…. 누군가의 말처럼 눈물젖은 계란빵을 먹어보았다.

그해 여름, 남편의 회사가 부도가 났다는 뉴스가 어지럽게 흩어졌다. 대기업에 다닌다는 자부심도 무너지고 당장 직원들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남편의 불안한 눈빛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함께 웃고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사표를 내고 다른 회사로 떠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갈등이 많았을까.

보내고 남는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회사에서는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갈지 모르는 불안감이 닥쳐 그동안 부었던 적금과 보험을 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내 우리나라에 IMF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폭풍이 불어왔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큰 아이가 고2, 작은 아이가 중3이었다. 아이들의 밥상이 헐거워졌고 도시락 반찬이 그저 그랬다. 용돈은 달라 생각도 못하고 줄 처지도 안 됐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냥 그렇게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동생과 함께 생전 처음 겨울거리로 나갔다. 그해 계란빵이 막 유행하고 있었다.

나처럼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이 선택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희망이 거리에 서는 게 아니었을까?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중리동 시장 앞 버스정거장 옆에 무작정 포장마차를 세웠다. 그동안 남편의 회사가 두터운 방호벽이 돼 주었던 우리집에 불어 온 겨울바람은 차고 찼다. 그동안 쌓았다고 생각하던 체면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꾸만 타기만 하는 계란빵을 굽는 것에 서툰 것이 속상하기만 했고, 타다만 익다만 계란빵으로 허기를 메워야 했다. 그럭저럭 옥이와 순이라는 종이간판을 걸고 붕어빵은 익어갔다. 아기들이 가져오는 동전이 눈물나게 고마웠고, 간혹 밤길에 들어오는 남자손님들이 등골 서늘하게 했다. 용기를 낸 남편이 나와 시장으로 배달도 가고, 또 거기서 삶의 이야기는 펼쳐지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날 후배가 케이크를 사가지고 와 포장마차에서 촛불을 켜고 눈물 삼키며 케이크를 먹었고…. 신정을 보내고 오니 계란빵틀을 누군가 고스란히 빼 가 다시 장만해야 하는 ‘벼룩 간을 빼먹힌’ 일도 있었고…. 구청의 단속으로 리어카를 끌고 황급히 몸을 숨기려다 넘어져 무릎이 깨진 적도 있었다. 삶은 위기였으니 용기는 단단해져 갔다.

그러고 그 겨울. 펄럭이는 겨울바람에 섰는 딸이 안타까워 솜버선을 사가지고 오신 어머니는 우셨고, 아버지는 종이하나를 내미셨다. 사후신체기증서…. 부모님의 사후신체 기증서였다. 내가 세상에 와 공헌한 일 없고 자식들 고생만 시킨 몸, 세상에 주고 가고 싶다는 말씀이셨다. 도장을 찍으라 내미신 그 종이에 큰 딸인 나는 찍을 수가 없었지만 결국 부모님의 숭고한 뜻을 따르기로 하고 아버지와 소주 한 잔을 나누며 도장을 찍고 말았다. 애지중지 키운 딸들이 찬바람 부는 거리에 서서 계란빵을 파는 모습을 보신 부모님의 늑골이 얼마나 아프셨을지, 그래서 그 선택을 하신 부모님의 마음 때문에 참 많이 울었다.

그후 남편의 회사는 회의 신청에 들어갔고 기적적인 신화를 세우며 다시 일어났다. 그러며 우리도 그 겨울의 계란빵 장사도 막을 내렸다. 동전을 세며 하루의 몫을 계산했던, 실제 고백한다면 너무도 이익이 남지 않은 장사였지만 어려움이 닥치면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배운 시간이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공부를 톡톡하 그겨울에 할 수 있었다. 남편은 그 직장에서 무사히 정년퇴직을 했고, 우리는 계란빵 장사의 추억을 산 교훈으로 가슴에 묻게 됐다.

그 후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사후 헌체를 하셨고, 약속을 지키신 위대한 부모님으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그러다 손녀가 사온 계란빵을 보자 그 때의 추억이 떠올라….

웃었다.

손녀에게 이야기 해봐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지만 우리에게는 참 고마운 시간의 태엽을 감아두었다. 달콤한 계란빵을 입에 넣으며 이 계란빵을 굽는 그 누구도 우리처럼 지금이 삶의 옹이로 남아 용기가 되기를 기원했다.

(이 글은 10월 15일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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