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회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뒷골목에 허름한 단골술집이 있다. 땅거미 어스름 내려, 꽃등불이 켜지면 으레 습관처럼 기어드는 곳이다. 이곳을 번질나게 가는 건 진짜 버릇 같다. 물론 안주솜씨가 특별하다거나, 여주인의 맵시가 특별하지도 않다. 그런데 얼마 전 '거래'를 끊었다. 그날따라 현찰이 없어 소주 한 병 값(3000원)을 외상으로 달려고 했는데 그녀가 매몰차게 거절한 것이다. 근 10년 간 기천만 원은 족히 갖다 바친 곳인데 너무 매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여주인은 시시때때로 계란프라이 서비스를 원하는 주객을 '잠재적 불량고객'으로 낙인찍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됐든 그녀는 단골을 잃었고 난, 단골술집을 버렸다.

▶헤밍웨이와 천상병이 그랬듯 단골 선술집은 예술을 잉태하는 발원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 종을 울리는 소풍장소다. '평등하게 빈곤한' 사람들은 그곳에서 노을빛만큼이나 발그레하게 술에 젖는다. 때문에 단골술집은 여우의 '거시기'를 닮았다. 여우란 놈은 매일같이 자기 영토를 돌아다니며 나무나 바위 여기저기에 오줌을 갈긴다. 영역표시다. 천사를 전사로 만드는 인간정글사회에서 사람들도 술을 마시며 영역표시를 한다. 그 행위는 다분히 불온하다. 일수거사(一水去士·한물 간 사람)라며 무시하고 차별하고 배격 당하는 시대에 오줌을 갈겨서라도 존재의 가치를 알리고 싶은 것이다. 인간거주지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건 자신의 불찰이 아니다. 우릴 관류하는 삼라만상, 생짜로 도시 이방인을 만드는 그 불온성에 원인이 있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 모두 변화한다. 인간, 사회,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게 변한다. 벚꽃이 잠깐 피고 지는 건, 피는 것도 아니고 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화들짝 피었다가 별안간 종적을 감추는 것이다. 마치 단골이 제집 드나들듯 목로주점을 기웃거리는 거와 마찬가지다. 주모(酒母)는 미소를 팔아 의리를 쌓고, 술꾼은 돈을 팔아 순리를 쌓는다. 단지 그것뿐이다. 돈만 건지면 되고, 돈만 주면 다 된다. 그러다보니 종종 인정머리 없이 굴기도 하고, 그것에 상처 받아 이별을 고하기도 한다. 싸고 비싸고의 문제가 아니다. 단골이 세 곳이면 세 개의 세상이 있다. 외상값 대신 시 몇 편 써주던 시절도 있었는데 참으로 야박해졌다. 시인들의 골목은 죽고, 이제 어디서 울어야하나? 마음이 시면 떫지나 말아야하는데….

▶외상이 통하지 않는 시대, 그래서 마음의 내상(內傷)을 입는 시대. 술 먹는 즐거움이 때로는 지겨움으로 돌변해버린다. 널 못 믿겠으니 돈을 바치라는 이 절박한 고해성사는 누구의 탓은 아닐진대 서글프다. 단골은 골수다. 변하지 않는 의리다. 마음보다 발길이 먼저 가는 변치 않는 우정이다. 그런데 그 외곬의 삶이 거부당하다고 있다. 한쪽만 바라보는 일, 한쪽만 보고 걸어가는 길은 어쩌면 정겹다기보다는 지겹다. 오늘도 어느 선술집에서는 '인간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을 놓고 왁자지껄한 술판이 벌어질 것이다. 다만 단골 중엔 반골(反骨)들도 많으니 주모는 순애보의 주군(酒君)들을 영접하라. 넝마주이의 세상, 단골의 멸종은 결국 인정의 몰락이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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