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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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 愼言牌와 承命牌
甲子士禍(32)


임사홍이 하루아침에 풍성군 봉작을 받고 금관조복으로 차리고 의기양양하게 입궐한 것은 저녁때가 다 되어서였다.

"전하, 신 임사홍 사은하옵니다. 금고(禁錮)의 죄인에게 봉군(封君)의 특전을 내리시오니 하해 같으신 천은을 보답할 길이 없사옵니다. 망극하여이다."

왕은 좌우를 다 물리치고 임사홍을 어탑 가까이 불렀다.

"차차 경에게 마땅한 실직(實職)을 내릴 것이니 섭섭히 생각 마오."

"섭섭히 생각하다니 당치 않사옵니다."

임사홍은 하늘이라도 오를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직 실직은 얻지 못하였지만 그의 세력은 이미 백관을 제압할 수 있는 막강한 것이었다. 오히려 어떤 실직에 국한되는 것보다 다만 봉군으로서 무제한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과인이 폐비 당시의 시정기를 읽어 보니 당시 정승이란 자들은 폐비 처분을 찬성하고 있고, 승지들은 처음에 반대하다가 태도를 바꾸었고, 대간도 간하기는 하였으나 폐비를 끝내 구원하지 못하였소. 불가하다고 간하여 군주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였으면 부월지하(符鉞之下)에 목숨을 바쳐야 옳은 일이지, 간하였다는 이름만 남긴 것이 옳은가? 당시 폐비 의논에 참여한 대소신료 모두가 죄가 있소. 이자들을 다 죄주어야 설원(雪寃)이 되겠는데 어쩌면 좋겠소?"

"전하, 모두가 죄인이라도 경중(輕重)이 있사옵니다. 일시에 모두에게 죄를 준다면 누구와 더불어 정사를 의논하고 정치를 하실 것이옵니까? 모두가 독 안에 든 쥐이오니 급히 서두르실 것이 아니옵니다. 전하, 장흥부부인 신씨를 부르셔서 폐비의 억울한 사정을 들으시는 것이 좋을 듯 하옵니다. 신이 듣기로는 폐비께서 사약을 드시고 숨지시기 전에 '장차 원자가 임금이 되시면 이 말씀을 전해 주시오' 하고 당신의 생모 장흥부부인에게 유언하신 말씀이 계시다고 하오니, 전하께서 장흥부부인을 부르셔서 친히 하문하신 후에 설원하시는 것이 순서일 듯 하옵니다."

임사홍은 폐비 윤씨가 죽을 때 토한 피가 묻은 유물(遺物)이라는 적삼을 왕에게 보여줌으로써 왕의 분노를 격동시켜 피의 숙청을 단행하려는 것이었다.

임사홍은 진즉부터 은밀히 장흥부부인 신씨와 서로 내통하여 폐비 윤씨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으로 조정을 숙청하고 권토중래할 기회가 오기만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님께서 내게 유언을 남기셨다는 말을 듣기도 내 평생에 처음 일이오. 세상에 이런 불효자가 어디 있겠소? 경은 내 어머님께서 남기신 유언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소?"

"신은 모르옵니다. 장흥부부인만이 알고 있을 것이옵니다."

임사홍은 이미 서로 부동(附同)이 된 장흥부부인에게 다 들었을 것인데도 극적인 효과를 노리기 위해 자기는 모르는 것처럼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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