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연평해전 故박동혁 병장 아버지 박남준씨
참수리 357정의 의무병 파편 맞으면서 부상병 돌봐
“‘공무상 사망’ 처우 아쉬워 명예만이라도 회복시켜주길”

“10여년이 지나도 아직까지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21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된 제2연평해전 전사자 합동묘역안장식이 끝난 이후 묘역 근처를 서성이던 이가 있었다. 그는 안장된 묘비 하나를 먼 발치에서만 지켜볼 뿐 차마 다가갈 용기가 없는지 하늘과 땅만 번갈아 쳐다봤다.

2002년 6월 29일 제 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고(故) 박동혁 병장의 아버지 박남준(59) 씨였다. 박 병장은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군 경비정의 기습 공격에 맞서 싸우다 6명의 전사자가 발생한 참수리 357정의 의무병이었다.

사고 당시 부상 장병을 돌보려고 함교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100여개의 포탄 파편이 온몸에 박힌 채 국군수도병원으로 후송됐다가 80일만에 결국 숨을 거뒀다.

“어제(20일)가 아들이 숨을 거둔 날이었어요. 아직도 가슴 한 편에는 아이가 살아 숨쉬고 있는것 같은데…. 영화(연평해전)를 통해 교전 당시 아이의 모습을 그려봤는데 너무나 참혹해 말이 안 나오더군요.”

박 씨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고, 목소리는 울먹였다. 박 병장은 군 생활 중 휴가를 받고 나와도 부모의 일을 도울만큼 소문난 효자였다.

박 씨는 “휴가를 받고 나오면 친구들도 만나고 싶기도 할텐데 군복을 바로 벗어 던진 채 목수 일을 하는 나를 도와줬어요”며 “군복을 입은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하나가 없어 평생의 한이 될 줄은 몰랐어요. 동혁이는 한 점 나무랄 때 없는 효자였어요”라고 했다.

그는 특히 병원에서 잠시 눈을 뜬 박 병장의 마지막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온몸에 파편 100여개가 박혔는데도 병원에서 잠시나마 눈을 떴을 때 동혁이가 한 말을 잊지 못하겠어요. 자기 엄마한테 한 쪽 다리가 없다며 서럽게 울던 동혁이 모습이 아직 생생해요.”

박 씨는 끝내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박 씨는 공무상 사망으로 처리된 용사들에 대한 처우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군인으로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잃었는데 정부는 이들에 대한 처우가 일반 업무 순직이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라며 “유가족 중에 돈을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우리 아들들의 명예만이라도 회복시켜 달라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그동안 수차례 합동 안장을 요청해왔는데 이제라도 성사되니 가슴 속 응어리가 조금은 녹아내린 것 같아요”라며 “동혁이도 이제 편히 쉬었으면 합니다”고 했다. 박 씨는 행사가 모두 끝난 뒤에도 홀로 아들 묘비 앞에서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정훈 기자 classystyle@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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