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장일치로 통과 시켰던 시의회 기독교 단체·정부 외압 못이기고 양성평등으로 제명·내용 변경
행정력 낭비·입법능력 한계 노출

'대전시 성평등기본조례'가 시행 2달만에 폐기되면서 자치단체와 지방의회의 ‘함량미달’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대전시가 ‘성 소수자’라는 용어를 조례안에 포함시켰고,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대전시의회가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시행된 조례를 기독교 등 보수단체의 성난 여론과 정부의 외압에 부딪혀 스스로 뒤엎으면서 행정력의 낭비를 초래하고, 입법능력의 한계만 드러냈기 때문이다.

대전시의회 복지환경위원회는 16일 ‘제221회 임시회’를 열고, 대전시가 제출한 ‘대전시 양성평등 기본조례안’을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성소수자 보호 및 지원 조항’을 포함했다는 이유로 논란이 분분했던 ‘성평등 기본조례’는 해당 조항이 삭제된 ‘양성평등 기본조례’로 제명과 내용이 변경됐고, ‘성평등’ 용어는 ‘양성평등’으로 변경됐다.

이 과정에서 대전시는 ‘기독교대전 성결교회 남대전 교회’의 서명서와 여성가족부의 '성소수자' 부분을 삭제해달라는 공문등을 반영해 개정작업에 나섰고, 대전시의회는 이를 받아들여 이날 원안대로 처리했다. 입법예고 당시 ‘사회적 성’으로 명시됐던 용어가 조례안에 ‘성 소수자’로 바뀐 이유에 대한 의원들의 질문에 대전시 측은 법제처의 지적에 따른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신상열 시 보건복지여성국장은 “법제처로부터 ‘사회적’과 같이 불확실한 용어 대신 구체적인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며 “시 법무담당관의 검토의견에 직접적으로 ‘성 소수자’라는 표기가 적혀져 왔다”고 답했다. 이는 애초에 ‘성소수자 보호’에 대한 조항이 시의 자의적 연구나 해석에 의해 포함된 것이 아닌, 정부부처의 지시 사항에 불과했음을 시사한다.

심지어 박정현 의원은 “조례를 제정한게 불과 2달 됐는데 법을 제정하는 당시부터 ‘성 소수자’ 부분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책임소재를 시가 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책임을 시에 떠넘기기도 했다. 이 같은 허술한 조례안을 심도있는 논의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시의회 역시 ‘꼭두각시 의회’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문창기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자신들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조례를 4개월 만에 개정하고, 시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안휘재 기자 sparklehj@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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