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의 월요편지]<21> 배재대 석좌교수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석학 조지프 스티글리츠 콜럼비아대 교수는 미국은 ‘상위 1%가 지배하는 나라’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이미 만인이 경제성장의 혜택을 공유할 수 없는 사회라고 규정한 것이지요. 이런 미국사회의 불평등의 단면은 부자는 갈수록 부자가 되고, 부자 중에서도 최상층은 더욱 큰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갈수록 가난해지고 그 수가 더욱 많아지며, 중산층은 공동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평등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시장의 힘을 재조정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대안을 제시하면서, 미국의 미래를 두 가지 방향으로 예측하였습니다.

하나는 ‘격차가 더욱 벌어진 사회’입니다. 두 개의 계층이 하나의 경제 안에서 살아가면서도 서로 알지 못하고, 다른 집단이 어떻게 사는지 상상하지 못하는 사회를 말합니다. 다음은 ‘격차가 줄어든 사회’입니다. 모두가 운명공동체라는 가치를 인식하고 기회와 공평성에 대한 사회적 약속이 유지되는 사회를 말합니다. 물론, 스티글리츠 교수는 두 번째 미래상이 미국의 가치관에 부합되는 유일한 것이라고 결론을 지으면서도 지금 ‘희망의 불꽃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이클 샌델은 ‘소득, 권력, 기회를 정당하게 분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고 문제제기하면서 사실상 공정한 분배의 어려움을 시인하였습니다. 또 그는 분배 정의와 공동선의 연관성을 강조했습니다. 정의는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는 아니고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삶이 점점 더 괴리된다는 데 있으며 때문에 경제적, 산술적인 분배만이 아니라 부자와 가난한 사람간의 공동체의식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 간에 공히 운명공동체라는 의식을 갖게 하는 대안은 무엇일까요? 마이클 샌델을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공공시설이나 공공서비스를 고급화하고 개선한다면 그 혜택을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같이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류층 통근자를 끌어들일 대중교통체계를 개선하고, 민간 병원 못지않은 보건소를 운영하며, 각종 생활체육시설을 고급화 및 확대하고, 도서관이나 문화센터를 마을마다 건립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치가 필요한 이유는 빈부격차가 벌어지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유리되고, 공동체의식이나 연대이식이 약화됩니다. 부자는 경찰에 의존하기보다는 사설 경비업체와 계약을 맺고, 정부에서 운영하는 체력단련장을 사용하는 대신 사설 고급 스파를 이용하게 됩니다. 물론 그런 고급 사설시설도 필요하겠지만 공공시설을 고급화한다면 닫힌 공동체에 다양한 계층을 끌어들이고,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서로 소통하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대전시민대학의 경우, 바로 이러한 좋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전국에 수많은 공·사립 평생교육기관이 있지만 다른 기관과 성격이 다릅니다. 작년의 경우 연간 67명의 수강생이 4400여 강좌에 참여하였는데, 지역공동체내에서 서로 교류할 기회가 없었을 시민들이 계층을 초월하여 한 공간에서 함께 섞이게 된 것입니다. 세금으로 지원되는 대전시민대학을 통해 교육프로그램을 다양화, 고급화하고, 강사의 질을 높이며, 교육의 만족도를 높임으로써 부자와 서민들, 남녀노소가 같이 이용하는 데 목표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수강생 중에는 교수도 있고 학력이 낮은 분도 있으며, 소득수준이 높은 분도 있고 낮은 분도 있습니다. 어느 강좌는 고등학교 졸업자가 강사이고 대학 교수나 박사가 수강생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듯 ‘계층 혼합적’ 시설이나 프로그램은 참여자들의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 서로 공동운명체임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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