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조재근 온라인뉴스부 차장

북한 포격 도발로 남북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8월 25일. ‘무박 4일’ 마라톤협상 끝 전해진 남북 고위급 회담 타결 소식에 국민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한 줄기 햇살이 비치던 사이,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20살 갓 넘은 꽃 같은 젊음이 같은 초소에 근무하는 경찰 초급 간부 총에 맞아 숨졌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 엄청난 사건은 남북 고위급 회담 타결이란 빅이슈에 묻혔다.

20살 의경이 총에 맞았다? 뉴스를 본 순간 믿을 수 없었다. 필시 다른 나라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의경들이 근무하는 서울 구파발 군경합동검문소에서 발생했다. 더군다나 총을 쏜 사람은 도주 중인 범인도 아니고 30년 가까운 경력의 경찰 초급 간부 박모(54) 경위였다.

설마 하는 생각도 했다. 오발이라 추측했다. 하지만 정말 미친 짓이란 걸 알았다.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박 경위는 아들 같은 의경에게 다름 아닌 총기로 장난질했다. 총을 쏜 경찰관은 장난이었다고 했다. 그깟 빵이 뭐라고. 의경들이 자신을 빼놓고 빵을 먹었다는 이유로 의경 가슴에 총을 겨눈 박 경위. 경찰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박 경위를 구속했다.

박 경위의 말도 안 되는 행동은 사건 이후 속속 드러났다. 권총의 오발 방지장치(고무)를 제거했고, 총기관리 규정조차 몰랐다. 그는 평소 ‘권총 장난’을 쳤고, 과거 우울증 전력도 있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박 경위의 과거 전력이 아니라 사건 발생 후 경찰의 수사과정이다. 군인권센터 등은 현재 경찰 수사과정에 ‘제 식구 감싸기’ 의혹을 제기하며 명확한 진실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박 경위에 대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번 사건을 보면서 ‘과실이냐? 고의냐’의 판단 기준이 참으로 모호하다는 생각이 든다. 박 경위의 주장대로 방아쇠를 당겼을 때 실탄이 발사될 줄은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박 경위가 정확하게 의경 가슴에 총을 조준했고, 고무까지 제거한 총기를 격발했다는 것은 누가 봐도 고의성이 충분하다.

경찰은 “총탄 장전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역시 실수 또는 과실이라 판단할 명확한 근거는 될 수 없다. 설사 박 경위 진술대로 약실에 탄환이 들어 있지 않은 ‘공격발’로 인지해 방아쇠를 당겼더라도 규정에 전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의경에게 총을 조준했다는 것 그 자체가 매우 심각한 가혹 행위다.

만약 ‘공격발’이 아니라 공포탄이 발사됐을 때를 고려해도 마찬가지다. 실제 인터넷상에 떠도는 동영상을 보면 근거리에서 발사된 공포탄도 맞으면 적잖은 부상을 입는다.

수시로 사격훈련을 받아야 하는 경찰이, 그것도 30년 가까운 경력의 경찰관이 이런 사실조차 몰랐을까? 일각에서 주장하듯 애초 ‘업무상 과실’에 짜 맞춘 경찰 수사란 지적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제 식구 감싸기’란 말은 언젠가부터 언론기사에서 사용하는 단골 메뉴가 됐다. 이 말은 공무원과 경찰, 국회의원 등 이른바 권력기관이 자신들의 비위행위를 축소하려 할 때 많이 쓰인다.

국민 혈세로 녹을 먹는 벼슬아치에게 과연 제 식구는 누구인가? 제 식구 감싸는 데는 누구보다 수준급인 그 재주를 서민에게 부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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