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양가적 감정(ambivalence)은 양쪽 감정 어디에도 소속되면 안 될 것 같거나, 양쪽 다 소속돼야 할 것 같은 감정을 말한다. 내가 말한 의견을 모든 사람이 찬성할 수 없다고 느껴, 오른쪽도 왼쪽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를 보인다. 예컨대, 어떤 모임에 가기 싫은데 막상 빠지면 욕할까봐 슬쩍 묻어간다. 그래서 말할 때도 (한참을) 고민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상대방이 싫어할 것 같고, 이렇게 얘기하면 오해할 것 같으니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다. 자신의 의견이 있는데 내비치지 않고, 말하고 싶으나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한다. 이런 '의도된 침묵'은 일종의 배려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남에게도 상처주지 않겠다는 결의다. 사촌이 땅을 샀을 때 배가 아픈 것은, 배라도 움켜줘야 스스로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사랑 받고 싶어 하면서 욕먹을 짓만 골라하는 것처럼….
▶선택적 함묵증은 선택적으로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특히 마음이 다쳤을 때 입을 다문다. 말문을 닫고 마음의 문까지 닫으니 스스로 어둠속으로 들어간다. 부정적인 말은 전염되고 몸은 거기에 반응한다. 연극에서 가면을 등장시키는 이유는 인물에 감정이입을 하지 말라는 배려이자, 감정을 들키지 않기 위한 '의도된 그림자'다. 흠모와 연민, 사랑과 미움 등 두 가지 감정의 언저리에서 배회하도록 얼굴을 가리는 것이다. 가난한 연극의 반대말은 부유한 연극이다. 결국 연극의 반대말은 연극이다.
▶양가의 감정은 당황스럽게도 비율조차 동등하다. 남의 삶에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도록 막지만 결국 남의 삶에 깊게 개입한다. 마치 어둠과 그림자가 빛깔은 같지만 상처가 다르듯. 예쁜데 싸가지가 없고, 밥맛은 없는데 사랑이 배고파지는 것. 지나가는 여자는 섹시한데 내 애인은 노출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좋은 제품을 고르면서 싸게 샀으면 하는 심리. 누군가 사고로 죽었다는 슬픔과 같은 사고에서 친한 사람이 살았다는 안도감…. 이는 본능인데 불능이다. 그래서 세상사는 즐겁지만 힘들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