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문백면 묘소서 행방묘연설
국내 박물관 소장 풍문도 나돌아
경찰 내사 진행 … 수사결과 촉각

▲ 무덤 안에 있어야 할 묘지석이 사라진 것으로 보이는 송강 정철 묘소(충북도기념물 제106호). 조준영 기자 reason@cctoday.co.kr
#1. 1971년 7월 5일 충남 공주시 금성동 송산리 고분군. 제6호 벽돌무덤 뒤 쪽에서 배수로 작업을 하던 인부의 삽에 뭔가 단단한 물체가 걸렸다. 이를 계속 파내려 가자 흙을 구워 만든 벽돌로 지어진 아치형 구조물이 드러났다. 조사 결과 이 구조물은 그동안 발굴된 것과는 다른 전실묘의 입구인 것으로 확인됐다. 발견 3일 뒤인 7월 8일 무덤의 입구가 열리자 가로 41.5㎝, 세로 35㎝ 크기의 돌 판이 정부에서 급파된 발굴단을 맞았다. 이 돌판 첫머리에는 '영동대장군백제사마왕(寧東大將軍百濟斯麻王)'이라고 적혀있었다. 한국 발굴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무령왕릉이 1400여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2. 조선 전기 수양대군 왕위 등극에 공헌한 문신 한명회(1415~1497)의 분묘에서 도굴된 유물을 유통하려던 일당이 2009년 6월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이 유통하려고 했던 유물은 분청사기(가로 25㎝, 세로 30㎝) 24점이다. 분청사기에는 한명회의 가계도, 계유정란 당시 행적 등이 적혀 있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한명회가 계유정난 당시 앞장서 주살한 재상 황보인의 사위가 될 뻔 했다는 일화가 기록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무령왕릉의 존재와 한명회의 숨겨진 일화를 세상에 알린 것은 바로 '묘지석(墓誌石)'이다. 묘지석이란 죽은 사람의 이름, 일생의 행적 등을 기록해 무덤에 묻는 표식으로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이다. 그런데 최근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鄭澈, 1536∼1593)의 묘지석이 사라졌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묘소 안에 고이 묻혀 있어야 할 묘지석의 행방이 묘연한 것이다.

심지어 국내 한 박물관에 있다는 풍문도 공공연히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진천지역 향토 역사에 정통한 A(57) 씨는 "최근 들어 송강 선생의 묘지석이 사라졌다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며 "일부에서는 국내 한 박물관이 묘지석으로 추정되는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고 전했다.

충청투데이 단독 취재결과, 이 같은 의혹은 상당 부분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이 묘지석과 관련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2일 대전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따르면 송강 정철의 묘지석과 관련, 내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최근 영일 정씨 문청공파 문중 관계자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충청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묘지석과 관련한)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건 맞다"면서도 "아직 내사 단계여서 자세한 내용은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문중도 경찰의 수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문중 관계자는 "경찰 참고인 조사를 받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며 "선조 묘소를 보호해야 하는 자손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한편, 송강 정철의 묘소는 본래 경기도 고양군(현 고양시) 원당읍에 있었으나, 현종 6년(1665년) 현재의 위치로 이장됐으며, 1996년 1월 충북도기념물 제106호로 지정됐다.

조준영 기자 reason@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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