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의 월요편지(20)]배재대 석좌교수

일주일 전에 처서가 지났으니 절기상으로는 가을입니다. 또한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나, 하늘이 높아지는 것을 보면서 이미 몸은 마음보다 먼저 가을을 느낍니다. 가을에 대한 이미지는 대체로 ‘고독하다, 외롭다, 쓸쓸하다’입니다. 그런데 비슷한 것 같은 이 표현들을 좀 더 깊게 들어가 보면 각기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고독은 홀로 있다는 점에서는 외로움과 같으나 능동적으로 홀로 있는 것이고, 외로움은 타인으로부터 소외된 공허한 감정을 일컫습니다. 쓸쓸하다는 감정은 고독과 외로움과 비슷하지만 예를 들어 ‘겨울 들판’을 표현할 때 쓸쓸하다 외에 고독하다거나 외롭다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쓸쓸하다는 감정은 주체적 판단이라기보다는 분위기나 상태를 말하는 수사적 표현인 듯합니다.

고독을 느끼는 심리적 배경은 부정적인 것으로부터 연유됩니다. 강상중 교수는 ‘살아야 하는 이유’에서 현대인들은 세련되게 교제하고 있지만 사실상 신뢰감이나 단란함, 따뜻한 사랑이 부족하고 자의식 과잉에 의한 긴장과 고독과 살벌한 느낌만 존재한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독의 뿌리는 자유와 독립과 자아가 지나쳐 발생하는 심리상태인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맞선 볼 때의 심정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라는 경고가 나올 정도입니다.

정신과 의사들은 ‘고독감’과 ‘고독력’을 구분하기도 합니다. 고독감은 수동적인 마음 상태지만 고독력은 능동적인 마음상태로, 고독을 이겨내는 힘을 말합니다. 이렇듯 고독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극복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큰 정신적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입니다. 사이토 다카시는 ‘혼자있는 시간의 힘’을 통해서 ‘혼자 있는 시간에 느끼는 고독감’을 엄청난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며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고독은 혼자만의 시간, 외로운 시간이지만 마음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환골탈태의 과정이기도 하기에, 고독을 통하여 재생과 회복 그리고 창조의 원천을 만들 수 있습니다. 베토벤은 사흘 동안 골방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작곡에 몰두했습니다. 베토벤의 아름답고 감동적인 창작은 이런 고독 상태를 거쳐서 탄생한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시에서도 절절한 고독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을 만지면서 깊은 시름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이 시를 통하여 우리는 이순신 장군의 고독한 심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군의 이와 같은 고독은 나아가 나라를 지켜냈습니다. 그래서 강한 사람이 고독하고, 고독한 사람이 위대하다는 말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동양에서도 고독에 관해 일본 작가 다케나가 노부유키의 저서 ‘고독력’이 나와 인기를 누렸고, 중국의 베스트셀러 여류작가 류옌은 ‘용기있게 말하세요. 지금 외롭다고’라는 저서를 내어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판했습니다. 그런데 이에 못지않게 최근 우리나라 소설가 원세훈 씨에 의해 ‘고독의 힘’이 출간되었는데, 고독을 통해 삶의 풍요를 발견할 수 있는 지침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고독이란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관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놓고 그곳으로 들어가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마치 작가의 서재처럼, 화가의 화실처럼, 열심히 일하는 기술자들의 땀내 나는 작업장처럼, 졸음을 견디며 공부에 매달리는 학생의 공부방처럼 자신만의 치열한 내면공간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베토벤이나 이순신 장군처럼 엄청난 창조로 인류에 크게 기여할 수는 없을지라도 청명한 이 가을, 나만의 내밀한 공간에서 진정한 고독의 힘을 맛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