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1956년. 중국 충칭시 가오탄(高灘)촌에 살던 20살 청년(류궈장)은 10살 연상이자 아이가 넷 딸린 과부(쉬차오칭)와 사랑에 빠졌다. 마을사람들은 과부가 총각을 꼬드겨 욕심을 채웠다며 쑥덕거렸다. 따가운 시선을 받던 두 사람은 해발 1500m의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젊은 남편은 화전을 일구고 가축을 치는 고된 일과에도 아내를 위해 수직에 가까운 절벽에다 돌계단을 만들기 시작했다. 오로지 망치와 정, 삽 하나로 6000개의 '사랑의 하늘 계단'을 놓은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계단 옆에는 작은 구멍을 따로 만들어 손으로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 작업은 자그마치 반세기 넘게 걸렸다. 지난 2007년 남편은 병사했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사랑의 족적을 느껴왔던 여인도 5년 후 하늘나라로 떠나갔다.

▶원앙은 금슬 좋은 부부의 대명사다. 하지만 수컷은 더할 나위없는 '바람둥이'라고 한다. 짝짓기가 시작되면 자갈색 앞가슴과 오렌지색의 부채형 날개를 돋우며 암컷을 꼬드긴다. 수시로 '체인징 파트너'도 한다. 짝짓기를 하고 난 수컷은 곧바로 몸을 씻어버리고 모든 양육을 포기한 채 떠나버린다. 물론 암놈들도 서방질을 한다. 원앙새 새끼들의 DNA 검사를 해 봤더니 약 40%가 지아비의 유전자와 달랐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교미하는 것은 암놈도 도긴개긴인 셈이다.

▶포유류와 조류의 90%는 배우자를 앙큼하게 속인다. 암수가 평생을 같이 사는 일부일처제는 겨우 3%(영장류) 정도다. 일부일처제 동물 180종 중 불과 10%만이 유전적으로 진짜다. 일부일처제의 대표격은 황새와 기러기다. 이들은 잠시도 부부가 떨어져있는 법이 없고 암수가 한 시간에 한 번씩 교대하며 둥지를 지킨다. 사람과 새는 성(性)적 특성이 닮았다. 남성들의 바람기는 많은 씨를 남기겠다고 발버둥치는 것이고, 여자는 건강한 유전자를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 발버둥친다. 어찌됐든 사람은 늙지만 사랑은 늙지 않는다.

▶구두(신발)는 한사람의 활동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인이다. 이력서의 이(履)자가 신발을 뜻하듯 개인이 걸어온 산역사다. 부부의 연(緣)은 ‘함께’ 걷는 일과 ‘오래’ 걷는 것을 병합한다. 그리고 오래도록 함께 갈 것을 조용히 강권한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새 구두 한켤레가 현관에서 빙긋이 웃고 있었다. 구둣발에서 빗물이 줄줄 흘러내리던 모습을 아내가 본 모양이다. 미세하게 구멍이 났던 구두는 이미 오래 전 생명을 다해 온몸으로 빗물을 받아온 터였다. 이제 가난했던 ‘발’은 새로운 임무를 띠고 족적을 남길 채비를 끝냈다. 키높이 구두를 신어 아내와 눈높이를 맞췄던 지난 시절은 가고 없다. 이젠 굳이 눈높이를 맞추지 않아도 아내와의 삶의 높이가 같다. 구두는 늙지만 그 구두를 신는 사랑은 늙지 않는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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