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안경전의 9000년 한민족사 이야기16
신교(神敎)의 삼신(三神) 사상에 따라 나라의 영역을 셋으로 나누어 다스림!

▲ <삼한三韓의 수도 위치> 6세 단군 때 신지 발리는 자신이 지은 서사시 <서효사>에서 삼한의 수도를 저울대(소밀랑, 송화강 아사달), 저울추(안덕향), 저울판(백아강)에 비유하였다. 세 수도가 하나의 저울이 되어 균형을 유지하는 한, 고조선의 태평시대는 계속하여 보전될 것이라 하였다『 고려사』
그러나 『삼국유사』「고조선」조를 보면 중국의 『위서魏書』를 인용해 '단군왕검이 조선을 개국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위서』는 서기 250년 전후 인물인 왕침(王沈)이 저술한 것으로 추정되는 책입니다. 바로 그 왕침의 시대로부터 '2천 년 전 (단군이) 아사달에 수도를 정하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했는데 요임금과 같은 때'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단군조선 2천 년에 대한 내용은 한국사 교과서 어디에도 없습니다.

-강단 사학계가 단군조선의 역사를 곧이곧대로 교과서에 싣지 않고 부정하는 이유나 근거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대한민국에서 교사들을 양성하는 교원대학 교수 중에 소위 대한민국 '고조선학 1호 박사'라고 하는 사람이 낸 책 이름이 뭐냐? 『단군, 만들어진 신화』입니다. 그 책을 보면 '청동기 사용 시기를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이 청동기를 쓴 것은 아무리 끌어올려도 지금부터 2700년을 넘을 수 없다'고 거침없이 주장합니다. 한마디로 '단군조선이 BCE 2333년에 건립되었다고 하지만, 고대국가의 출현은 청동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BCE 10세기 이전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추정을 이유 삼아 지금까지 한국의 주류 사학계는 한국의 청동기 시대를 올려 잡아도 BCE 1300년 이후로 설정합니다. 그러고는 단군조선이 그 뒤에야 탄생했다, 그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청동기 문화가 고대국가 성립의 필요조건은 결코 아닙니다. 이집트를 가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수도인 카이로를 조금 벗어나 가자 지구의 거대한 피라미드가 세워져 있는데 그 경우처럼 고대 이집트 왕조도 청동기 문명에 기초해 성립된 게 아닙니다. 중남미의 경우도 청동기 없이 석기만으로도 고대 국가를 건설했습니다. 마땅히 지금 세계 역사학의 흐름에서 '청동기시대에 국가 탄생'이라는 주장은 사실 폐기처분되고 있습니다.

또 최근 고고학 성과에 의하면 한민족이 BCE 2500년경 이미 청동을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유적이 발견됐습니다. 요서 지역의 하가점 하층문화가 그것입니다. 이는 황하 유역의 BCE 2200년경, 시베리아 지역의 BCE 1700년경보다 더 이른 시기에 시작된 청동기 문화입니다. 실정이 이런데도 한국의 사학자들은 청동기 문명과 국가 운운하며 단군조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당장 『환단고기』를 펼쳐보기만 해도 단군조선의 건국과 이후 2천 년 역사를 소상히 알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환단고기』가 전하는 단군조선의 역사 가운데 주요한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한국인의 진정한 조선은 국조(國祖)인 단군왕검께서 한민족의 고유문화인 신교(神敎)의 가르침을 받들어 세운 단군조선입니다. 그런데도 한국인은 정작 단군조선의 정신사의 실체를 제대로 모르고 있습니다. 공식 교육과정에서 배울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삼국유사』에서도 단군조선을 언급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간략한 데다 단군조선에 이어 중국과 일본이 왜곡한 기자조선이니 위만조선이니 잘못된 역사를 기술해 단군조선의 참 역사를 전해주지 못합니다.

『환단고기』 중 고려 말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를 읽어보면 단군조선을 세운 초대 단군왕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단군왕검이 5월2일 태어나 14세에 웅씨왕의 추천으로 대읍국의 비왕(裨王=부왕)이 되었다, 이후 24년간 국사를 돌보다 38세에 초대 단군왕검으로 즉위했다는 내용입니다.

이후 단군조선은 모두 2,096년에 걸쳐 47분의 단군들이 다스립니다. 초대 단군왕검 때부터 왕들은 삼신상제님의 가르침을 받는 신교(神敎)의 삼신(三神) 사상에 따라 나라의 영역을 셋으로 나누어 다스렸습니다. 이것이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입니다. 대(大)단군이 중앙의 진한(辰韓=지금의 만주)을 다스리면서 두 명의 부(副)단군을 통솔했습니다. 부단군들은 번한(番韓=지금의 중국 요령성 서부와 하북성 북부를 비롯한 산동성에서 양자강 유역까지 동부 지역)과 마한(馬韓=지금의 한반도)을 각기 맡아 다스렸습니다. 이것이 대륙을 경영하던 시대의 북삼한(北三韓)입니다. 나중에 이 북삼한이 몰락한 뒤 그 백성들이 한반도의 한강 이남으로 내려와 신라, 가야, 백제의 전신인 진한과 번한, 마한을 세웠습니다. 이것이 한국의 역사 교과서에 실린 남삼한(南三韓)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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