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의 월요편지]<19>
배재대 석좌교수

저는 매일 새벽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중에는 제 ‘공부방’ 근처인 ‘시청 앞 가로수길’을 자주 걷고, 주말이면 집 근처인 유등천을 따라 걷곤 합니다. 새벽운동은 동네 헬스클럽에서 하는데 건강을 위해 의무적이고 습관적으로 하는 것이라 마음의 여유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시청 앞 가로수길과 유등천을 걸을 때는 전혀 느낌이 다르지요. 계절마다 빛깔과 모양이 다른 나무와 꽃 그리고 강물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산책은 굳이 건강과 연결할 필요도 없고, 시간의 제한을 받을 필요도 없으며 뚜렷한 목표를 세울 이유도 없습니다. 문득 외로움을 느낄 때, 일상에 매여 있는 질서를 깨고 싶을 때, 꽃과 나무, 그리고 벌과 나비들을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싶을 때 산책에 나섭니다. 고독과 함께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이며 독립적인 삶의 모습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걷는 동안 저처럼 혼자인 사람도 만나지만, 삼삼오오 소곤거리며 걷는 무리도 보게 되며, 어느 때는 유모차를 끌고 가는 젊은 엄마가 아이와 눈을 맞추는 평화로운 표정도 볼 수 있습니다. 주위의 녹색이나 꽃이 사람들의 옷과 잘 어울릴 때도 있습니다.

시청 앞 가로수길은 샘머리공원과 보라매공원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고, 4계절 내내 나무와 꽃들의 빛깔이 달라집니다. 봄의 연두빛으로 시작하여 여름의 진초록빛, 그리고 가을의 단풍과 낙엽으로 이어집니다. 붉은 영산홍이 두드러지지만 진달래, 벚꽃, 철쭉, 비비추, 옥잠화 등이 앞 다투어 자태를 뽐냅니다.

어느 때는 사진도 찍어 보고, 영산홍이 빨강, 분홍, 연분홍, 흰색 등 빛깔이 다양하다는 것도 알게 되고, 벤치에 앉아 사색에 잠기기도 합니다. 사실 요즘은 매미소리가 요란해 사색에 방해를 받기도 하지만 그 소리가 싫지 않고 정감 있게 들립니다. 특히 시청 앞 가로수길 입구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평화의 소녀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며가며 잠깐씩, 눈과 마음이 소녀의 얼굴에 머물다 갑니다. 소녀상의 상징들, 예를 들어 뜯겨진 머리카락, 땅에 딛지 못한 맨발의 발꿈치, 어깨 위의 작은 새, 빈 의자, 그림자와 흰나비를 보고 있노라면 그분들의 한이 제 가슴에 먹먹하게 전해져옴을 느낍니다.

올 여름처럼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해질 무렵 유등천에 나가면 시원한 바람이 반가이 맞아줍니다. 물이 졸졸 흐르고, 그 위에 새들이 한가로이 앉아 부리를 꽂아놓고 피라미, 붕어, 메기, 새우, 송사리 들을 기다리고 있으며, 보행로를 사이에 두고 양 길가로는 풀과 꽃들이 뒤엉켜 있는데, 구획을 나누어 키운 단정한 모습보다는 훨씬 친근감을 느끼게 됩니다. 제 경우에는 산책을 다녀온 날이면 좋은 하루를 보냈다는 만족감이 더욱 높은 듯합니다. 이런 날이 많을수록 인생도 그만큼 길고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사색과 정감과 추억이 마음을 가득 채우기 때문이지요.

사실 제 건강의 일등공신은 새벽운동인데도 불구하고 요즘은 운동방식이 불만입니다. 런닝머신 위에서 기계가 돌려주는 대로 걷고, 남들처럼 앞에 있는 모니터 TV 프로를 주시하는데, 불현 듯 이러한 피동적인 운동방식이 마음에 안 들기 시작했습니다. 기계에만 몸을 맡긴 채 저 자신을 잊는 것 같아서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런닝머신 위에 오르지 않고 실내를 걷고 있습니다. 걸으니까 생각도 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운동하는 모습도 보며, 마주치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기도 하는데 그것이 훨씬 더 인간적이고 '주체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운동 방법의 작은 변화를 통해 일상을 다시 바라볼 수 있다는 잉여소득도 얻고 있지요. 이렇게 홀로 유유자적 걸으면서, '내려놓음으로 얻은 자유'를 새삼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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