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끈적이는 시선과 춘정이 점멸하는 S노래방에서 남자교사가 여교사의 몸을 더듬으며 블루스를 추자고 치근덕댔다. 옷이 뜯겼다. 여교사가 적극적으로 반항하자 바로 옆에 앉아있던 교장이 오히려 여교사를 나무랐다. 이후 1년 넘게 여자교사는 야만인들의 소굴에서 굴욕적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 ②남자 교사 A가 여학생을 상담실로 불렀다. 그는 다짜고짜 여학생 허리를 쓰다듬고 엉덩이를 주물렀다. 심지어 옷 속으로 손을 넣어 맨살을 만지고 가슴까지 만지려했다. 영어교사 B는 여학생들에게 황진이, 춘향이 등의 이름을 붙이거나 연예인과 성관계하는 상상을 수업시간에 들려주기도 했다. 올해 상반기 성폭력으로 징계 당한 초·중·고교 교사는 닷새에 한명 꼴에 이른다.

▶낙낙한 흰 블라우스에 주름치마를 입고 교단에 선 여선생님은 천사였다. 올라간 목선에 소매 끝을 단정하게 여민 블라우스는 순결이었고 청순 그 자체였다. 왜 그렇게 예뻐 보였는지 사춘기의 아이는 때때로 몽정까지 했다. 너무 아팠다. 너무 아파서 소리도 못 냈다. 몸을 점령했던 불온한 성징의 조짐은 비밀스러운 짝사랑이었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러운 존엄이었다. 아이는 빨리 크기를 소망했지만 자라지 않았다. 사춘기의 꽃은 얄밉게 피고 질뿐, 전설처럼 늙어가는 비루먹을 상념에 그치고 말았다.

▶제자의 딱한 사정을 아는 선생님은 10리(4㎞)길을 걸어와 차비까지 털어놓고는 슬며시 갔다. 셋방에 살면서도 공납금을 대신 내주었고, 도시락을 못 싸온 제자에게 자신의 도시락을 내밀었다. 때론 사랑의 매를 들었다가 그게 미안해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선생이 '바담풍'이라고 하면 학생도 '바담풍'이라고 했던, 그림자도 밟지 않던 시절이었다. 선생님은 하늘이었고 동시에 그늘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선생을 두고 '꼰대'라고 부른다. 꼰대는 자기가 만든 틀 안으로 아이들을 강제 편입시키는 늙다리(늙은이)인데, 한마디로 얘기가 안 통한다는 뜻이다. 급기야 ‘걔, 쟤’라는 호칭으로 불리더니 교단이 무너졌다는 소리마저 곳곳에서 들린다. 이는 선생님이 자초한 비극이다.

▶예전엔, 길에서 애들(청소년)이 좀 아니다 싶으면 타이르기도 하고 심하면 야단도 쳤다. 이제는 못 본체하고 그냥 내버려둔다. '어른'들이 사라졌기 때문이고, 동시에 ‘꼰대’로 변했기 때문이다. 인생은 학교다. 다시 말해 학교가 인생의 시원(始原)이라는 얘기다. 스승은 무례한 사람의 행실을 바로잡아주는 존재다. 그런데 오히려 선생의 행실을 바로잡아야할 시대라니…. 세상에는 이해할 수 있는 것과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 싶은 것과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스승과 꼰대 사이에서 그 선택권은 학생이 아니라 교사에게 있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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