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규 서예이야기]

‘정’(鼎)이란 세개의 발과 두개의 귀가 달린 금속제 솥으로, 고대 중국에서는 요리는 물론 형구(刑具)로도 쓰였다. 주정왕(周定王) 원년(BC606)의 일이다. 춘추 오패(五覇)의 한 사람으로 꼽힐 정도의 실력자이자 천하에 대한 큰 야심을 품고 있었던 초장왕(楚莊王)은 육혼(陸渾)의 오랑캐를 토벌하고 낙수(洛水) 근처로 진출했다.

당시 낙수 북방에는 주(周 )의 수도 낙양이 있었는데, 장왕(莊王)은 주(周)의 국경에 대군을 배치해 공격할 기세를 보였다. 그러자 정왕(定王)은 왕손만(王孫滿)을 보내어 장왕의 노고를 두텁게 위로했고, 이에 장왕은 역대의 왕조에 계승되고 지금은 주왕실에 대대로 전해지는 정(鼎)의 유래에서부터 설명했다.

이 이야기는 ‘춘추좌전’에 전해진다. 여기에서 ‘정(鼎)의 경중을 묻는다’는 것은 제위(帝位)를 노리는 은근한 마음이 있는 것을 뜻한다. 정(鼎)의 유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것은 재위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이 말은 ‘상대의 실력이나 내정을 들여다보고 그 약점을 찌른다’는 뜻으로 쓰이게 됐다. 여담(餘談)이나 전국책의 동주편에 진(秦)에서 구정(九鼎)을 요구 받은 주왕(周王)이 신하인 안솔(顔率)의 변설로 제왕(齊王)의 힘을 빌어 진을 쫓아버린 기록이 보인다. 그러나 반대로 제왕이 구정을 요구했을 때, 안솔(顔率)은 “옛날 주(周)는 은(殷)을 토벌해서 얻었는데 그 하나를 9만명이 끌고 왔다. 구정을 옮기려면 81만명이 필요합니다.”고 말해 제왕을 놀라게 했다. <국전서예초대작가·前대전둔산초 교장 청곡 박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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