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류용환 대전시립박물관장

최근 모 재벌가 2세들의 경영권 다툼이 흥미진진한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해, 마치 조선 초기에 일어난 '왕자의 난'을 연상케 한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과 재물 앞에서는 부자간에도 의가 상하는 일이 흔하였나보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사회생활을 통해서 많은 문서들이 오고갔던 사회였다. 공문서는 물론이거니와 일상생활에서도 필요에 따라 다양한 문서들이 생산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이러한 전통시대의 문서 가운데 분재기(分財記)란 것이 있다. 글자 그대로 분재기는 자녀들에게 재산을 나눠주기 위해 작성한 일종의 상속문서다. 분재기란 재산상속문서는 한 가족의 운영과 경제적 존속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재산의 정리방식이고, 자손들에게 재산관리를 맡기기 위한 초석이었던 것이다. 아울러 상속과 관련한 이해 관계자들의 다툼을 방지하기 위한 증표였다.

자녀들이 부모 재산을 상속받는 과정은 상황에 따라 크게 두 유형이 있다. 하나는 부모가 생전에 자녀에게 직접 분재해 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모 사후에 자녀들이 합의해 재산을 분배하는 것이다. 앞의 경우에 작성되는 문서를 허여문기(許與文記)라 하고, 뒤의 경우에는 화회문기(和會文記)라 한다. 그리고 이처럼 전면적인 분재와 달리 재산의 일부를 재주가 때때로 특정인에게 특별히 나누어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작성되는 문서는 별급문기(別給文記)라 했다. 별급 대상은 아들, 딸 뿐만 아니라 사위, 손자녀, 조카, 심지어는 혈연적으로 무관한 경우도 있다. 그리고 별급의 사유로는 과거급제, 생일, 혼례, 병 치료, 득남 등을 기념하거나 축하하기 위해, 혹은 빈곤한 사유나 심지어 병중에 자주 찾아오니 기특하여, 어릴 때부터 기른 정 때문에 등으로 다양했다.

한편 분재기 가운데 조선 전기의 자료를 통해서 우리는 그동안 알고 있던 조선시대의 적장자(嫡長子) 중심 재산상속과 봉제사 관행이 그리 오래된 전통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즉, 장남 중심의 아들을 우대하고 제사도 맏아들 몫으로 알았던 문화가 사실은 500년 조선의 역사 가운데 겨우 250여년 남짓한 전통이란 것이다.

그 이전인 조선 전기는 아들과 딸을 구분하지 않고 고르게 재산을 나눈 균분상속(均分相續)과 맏아들만이 아닌 딸까지 참여하여 모든 자식이 고르게 제사를 모시던 윤회봉사(輪回奉祀), 심지어 아들이 없는 경우 딸이나 외손이 제사를 모시는 외손봉사가 관행적이었던 사회였다. 즉, 이와 같은 재산의 균등상속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 중·후반(17세기경)까지 면면히 이어져온 전통적인 재산상속 풍습이었다.

이처럼 장자를 우대한 재산상속 풍습은 관점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조선 후기인 17~18세기경 유교적 이념인 적장자를 중심으로 한 종법제(宗法制)가 보편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면서 장자 또는 아들 에 대한 우대 상속이 뿌리를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즉, 남녀균분상속에서 아들과 딸을 차별하는 남자균분상속의 과도기를 거쳐 마침내 장남이 재산 상속에 관한 절대권을 행사하는 사회 풍습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고, 만석 이상의 재산을 쌓지 않으며,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고,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을 따라, 12대 300년간 부를 쌓으며 선행을 베풀어온 경주 최부잣집 이야기는 한여름 냄새가 진동하는 재벌가 재산다툼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성경에도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나니, 부자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라 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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