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의 월요편지]<16>
배재대 석좌교수

최근에 우리는 ‘문화는 돈이다’, ‘과학과 예술의 융복합’, ‘컴퓨터는 기계가 아니라 예술품이다’, ‘빌 게이츠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사업구상을 했다’는 등의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문화 또는 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담론이겠지요.

이렇듯 우리는 문화나 예술같은 소프트파워가 국력을 좌우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도 적극적인 문화예술 정책을 펴나가고 있습니다.정부 문화정책의 효시는 역시 프랑스입니다. 프랑스는 드골 정부인 1959년에 세계 최초로 문화를 담당하는 부서 즉 문화부를 설립하여 초대장관으로 소설가인 앙드레 말로를 임명했고, 그는 10년 동안 문화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지역문화 생성(문화 향유권)과 문화적 기반(예술가 지원)을 구축하는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프랑스는 각지에 ‘문화의 집’을 건립하여 파리에 집중되었던 문화생산 및 보급 활동을 분산화 시켰습니다. 국민 모두가 연극, 영화, 음악, 미술, 문학 활동에 참여하고 접근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든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기초예술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크게 확대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정권에 따라 강조점의 차이는 있지만 프랑스 문화예술 정책의 기조와 큰 차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항상 문화예술 정책의 목표와 대상에 대하여 논란이 있어 왔습니다. 정책의 대상이 예술인인가 아니면 예술소비자(시민)인가? 가장 우수한 예술 또는 예술가를 지원할 것인가(수월성), 아니면 발전가능성이 높은 예술 또는 예술가를 지원할 것인가(보편성),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쟁점은 있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시민의 문화 향유권 신장을 최우선적인 정책 목표로 설정해 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관점을 정리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화 향유권 신장이라면 공급자(예술가)뿐만 아니라 수요자(시민)에게도 지원을 강화하는 것을 뜻하고 특히 작년부터 시행된 ‘지역문화진흥법’에도 생활문화 또는 생활예술의 지원과 확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모두가 예술가 중심의 사업이나 지원만이 아니라 서민이나 문화 소외계층 등 다양한 국민들이 폭넓게 생활 속에서 예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지역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현지 밀착형 지역 사업을 확대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유념할 것은 과연 우리나라의 경우 공급자 또는 창조자 중심의 지원 프로그램이 제대로 가동된 적이 없고, 문화예술계의 역량이 제대로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요자만을 강조하는 것도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생활문화나 생활예술도 예술가의 창조적 역량과 참여가 전제되어야 꽃피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예술가 중심에서 시민중심으로의 전환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처럼 지역문화 생성과 예술가 지원을 통한 문화예술적 기반 강화라는 두 축을 병행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지역에서도 최근 이와 관련한 시각의 차이가 노출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개관한 ‘대전예술가의 집’과 관련하여 시민 세금으로 건립한 이 공간이 시민중심의 공간이어야지, 왜 예술가중심의 공간이냐는 반론이 제기되어, 명칭 변경을 논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민중심’이라는 표현은 너무 지당하고 ‘착한 말’이기 때문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시설은 예술가를 위한 공간입니다. 예술가를 지원해서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바로 시민의 문화 향유권 확대로 연결되기 때문에 예술가와 시민을 분리해 대척점으로 설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예술가의 영감과 재능은 창조적으로 재개념화되어 시민들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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