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진 '잠깐의 생'·크로켓 존슨 '마법의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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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자랐지만 아직도 내면에 남아 있는 어린 마음을 위로하는 '어른을 위한 동화'가 잇따라 출간됐다. 노년을 바라보는 작가가 자기 인생을 돌아보며 고쳐 쓰거나, 작가 사후에 원본을 다시 살려낸 작품이어서 눈길을 끈다. 

방송사 PD 출신 시인 김재진(60)의 '잠깐의 생'(꿈꾸는서재)은 성장동화다.

꽃들의 우체부 노릇을 하던 푸른잠자리는 길가에 흔히 피는 오렌지코스모스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오렌지코스모스는 푸른잠자리의 사랑을 외면하고 시험한다. 

푸른잠자리 곁을 맴도는 매미는 삶과 죽음을 순환으로 바라본다. 잠자리현실주의자는 모든 걸 숫자와 통계로 이해한다. 까치는 보람 있는 삶을 강조하고, 기차는 매일 정해진 시간표대로 살아간다. 단풍나무는 늘 사랑에 빠져 있다. 

등장인물들은 대화하면서 각자 생각하는 삶의 이치를 공유하고, 배운다. 

이 책은 작가의 1997년작인 '어느 시인 이야기'를 18년 만에 개작한 것이다. 그 사이 작가는 노모가 죽음을 향하는 것을 지켜봤고, 그 자신도 40대에서 예순의 나이로 늙었다. 

작가는 기본 줄거리 외에 제목부터 결말까지 대부분의 문장을 새로 썼다. 그 사이 성숙해지고 변화한 작가의 인생관이 작품에 새로 녹아들었다. 

"참아야 돼. 고통을 견뎌내는 것이 우리가 이 삶에서 배워야 할 일이야. 삶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시간의 흐름이야. 거기서 뭔가를 배우기 위해 우린 여기 온 거야."(75쪽.)

"사랑에 빠지는 순간 우린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서로 한몸인 것처럼 착각을 하지. 그게 바로 나의 우주와 타인의 우주를 혼동하는 증거야. (중략) 그런 혼돈 때문에 사랑은 언제나 짧은 기쁨 뒤에 커다란 고통이 따라오게 되는 거고."(57쪽)

미국 그림책작가 크로켓 존슨(1906~1975)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마법의 해변'(자음과모음)도 김미나의 번역과 작가의 원본 스케치로 다시 출간됐다. 

해변에 걸어나온 소년과 소녀는 자신들이 직접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주인공이 되고 싶다. 

소년은 "빵이랑 잼을 먹고 싶다"며 무심결에 해변에 '잼'이라고 쓴다. 파도가 글자를 쓸고 가자 마법처럼 그 자리에 접시에 담긴 잼이 놓인다. 

소년과 소녀는 이때부터 자기만의 이야기를 지어가기 시작한다. 마법의 해변은 '나무', '숲', '농장', '도시', 심지어 '왕'까지 뚝딱 만들어낸다. 두 사람이 만들어낸 거대 왕국은 마지막에 바다에 잠기고 말지만, 소년과 소녀는 바다 너머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고 믿는다. 

이 작품은 지나치게 관념적이라는 평에 수차례 출판사에서 거절당했다가 결국 원본 그림 대신 다른 사람의 삽화와 함께 1965년 '모래 위의 성'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그러다 2005년, 작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원본 글과 그림을 담은 '마법의 해변'이 다시 나온 데 이어 이번에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존슨이 정사각형의 그림 틀 안에 그려낸 단색 스케치는 간단하면서도 상상력을 자극한다. 독자의 상상으로 채울 행간이 넓은 작품이다. hye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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