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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골목·정겨운 사람내음… 추억이 새록새록

골목의 재발견⑫ 동구 소제동 솔랑시울길
낡고 좁은골목·점빵… 70년대 과거로 돌아간듯
1920~30년대 조성된 철도노동자 관사촌 흔적
가슴 저릿한 ‘아날로그 감성’이 살아나는 장소

김영준 기자 kyj85@cctoday.co.kr 2015년 07월 31일 금요일 제9면     승인시간 : 2015년 07월 30일 20시 03분
“XX야 노올자아~!”

마치 나른한 오후 어느 심심한 꼬마가 친구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대전 동구 소제동 솔랑시울길 일대는 대도시, 특히 21세기에는 더욱 느끼기 어려운 가슴 저릿한 ‘아날로그 감성’을 간직한 장소다.

이곳은 까치발을 들면 초록색·파란색 대문 너머로 이웃 세간살이가 훤히 보이고, 동네 개 짖는 소리가 좁은 골목을 울리는 곳이다. 아주머니들이 평상 위에서, 혹은 느릿하게 걸으며 수다를 떠는 공간이다.

다소 울퉁불퉁한 보도블럭 위를 걷다 보면 80년대 생은 코흘리개가 동네 뛰어다니던 시절이 떠올려진다. 그 이전 세대에게는 조금 퍽퍽했지만 찬란했던 시간을 돌이키기에 충분하다.

거리는 낡고, 점빵(가게)들는 제 빛을 잃었지만, 생생한 추억 탓인지 이 곳을 구닥다리로 보이지 않게 한다.

솔랑시울길은 계룡공업고등학교를 끼고 돈다. 학교 정문에서 우측으로 100m 가량 내려오면 나오는 삼거리에서부터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골목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대창 이용원’이 나온다. 슬래브지붕을 잘라 올려놓은 듯한 간판은 철제 미닫이문과 함께 옛날 감성을 물씬 풍긴다. 이용원 옆 나무전봇대에까지 눈길이 미치면 ‘여기가 2015년의 대전이 맞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수 십년은 족히 됐을 나무전봇대는 문화재급(?) 풍모를 자랑하지만, 이 일대 곳곳에서는 여전히 ‘현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담장을 넘어 골목 절반까지 드리워진 감나무, 서천 쌀상회 등을 감상하다 보면 예술작가들의 창작공간으로 쓰이는 ‘소제관사 42호’를 만나게 된다.

일제강점기인 1920~30년대 조성된 철도노동자 관사촌의 흔적이다. 찬찬히 골목을 훑어보면 곳곳에 왜색(倭色)이 보인다.

박공지붕(양쪽 방향으로 경사진 지붕형태) 밑에 한자로 된 숫자 번호판도 간간이 눈에 들어온다. 약 40여채의 관사건물이 외부 원형을 간직한 채 남아있다. 문화적, 역사적 가치도 크고 탐험하듯 관사들을 찾아내는 재미도 적지 않다.

솔랑시울길 양옆으로는 솔랑길과 시울길이 자리 잡고 있다. 오른편의 고지대가 솔랑길, 왼편의 저지대가 시울길이다. 중간의 솔랑시울길 너비가 5~6m인 반면, 이곳들은 폭 1m 정도의 좁은 골목이다. 꼬맹이들이 줄달음질 쳤을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굽이굽이 자리 잡고 있다.

솔랑산에서 이름을 딴 솔랑길 높은 곳에서는 발아래 동네 전경이 내려다 보여 눈이 트인다. 시울길 일대에는 온갖 꽃과 눈사람 등 형형색색의 벽화가 그려져 있어 눈이 호강한다. 운이 좋다면 이름모를 점박이 강아지와 지붕 위 꼬마 고양이들이 “반갑다”며 여행자를 반기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여정 끝에 목이 마르다면 솔랑시울길 끝자락에 있는 ‘커피아노’에 들려도 좋다. 샌드패블즈의 ‘나 어떡해’, 옥슨80의 ‘불놀이야’야 울려퍼지는 이곳은 이웃 주민들, 소제동의 사진을 찍으려는 출사객들이 목을 축이는 명소다. 29년 평생을 이곳에서 머문 구여진(29) 씨의 커피가 일품이다.

김영준 기자 kyj85@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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