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박진환 정치팀장

언제부터인가 '게임이론'이 학술 및 정치·외교적인 문제에서 최근의 경제현상을 설명하는 주요 학문적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이 가운데 천재 수학자인 존 내쉬 교수가 착안한 내쉬균형 이론 중 하나인 '죄수의 딜레마'는 상대에 대한 불신으로 최선이 아닌 차선의 결과가 도출된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주 이론으로 애용되고 있다. 이 이론은 협상에 임하는 양측이 나름의 전략을 구사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불신으로 협력적인 관계 형성이 아닌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선택으로 나쁜 결과를 야기하는 현상을 설명한다.

의리와 신의를 지키는 선택을 할 경우 전체적으로 더 나은 결과에 도달할 수 있지만 '불신'이라는 벽에 막혀 대부분 서로를 배신하면서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는 현상을 잘 설명해 준다.

불신은 자신은 물론 상대방까지 파멸로 몰고 간다는 점에서 사회 구성원과 국가가 극히 지양해야 하지만 국가 간, 사회 구성원 간 불신은 이미 한국사회에 지나치게 만연해 있다.

수년 간 이어지고 있는 여당과 야당, 정부와 야당, 청와대와 여당 간 대립에는 모두 상대방에 대한 불신이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다. 자신들이 직접 선출한 원내대표를 국회법 개정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사퇴시킨 새누리당의 경우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비박계인 당 지도부를 믿지 못한 친박계의 반란으로 시작됐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자신의 친정인 여당이 독자적인 정치노선을 걸을 경우 정책 엇박자에 따른 권력 약화를 가장 두려워했고, 무엇보다 지금의 지도부를 믿지 못한다는 점에서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극도로 경계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도 친노계의 리더인 문재인 당 대표가 지닌 공천권을 두려워 한 비노계의 반발로 연일 시끄럽다. 특히 친노계를 포함해 특정계파가 독점적인 세력을 만들지는 못한다는 한계로 인해 새정치민주연합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후 현재까지 계파 싸움으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새정치민주연합을 지지했던 국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있고, 정권 창출이라는 정당의 목적과도 배치되는 사안들이 계속 연출되고 있다.

또 분당이나 탈당도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의 늪에 빠진 정치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최근 가장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국가정보원의 해킹 의혹 역시 정부와 야당, 정부와 국민 간 불신의 결과물로 해석된다. 정부와 여당은 삭제됐던 51개 로그파일을 복구해 용처를 밝히고 SKT 회선 불법사찰 의혹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해명했다는 점을 내세워 "국내 민간인을 상대로 한 사찰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논란의 조기 종식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야당의 주장에 대해 '미약한 트집 잡기'로 국익에 반하는 행태로 치부하고 있다. 반면 야당은 "의혹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면서 공개 검증과 함께 자료 제출을 재차 촉구하고 있다.

이병호 국정원장이 "내 직을 걸고 불법 사찰한 적이 없다"고 단언하고 있지만 여러 석연치 않은 정황들이 발견되면서 야권을 포함해 대다수의 국민들은 여전히 국정원에 큰 의혹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이 여당 지도부를 불신하고, 야당이 계파 싸움에 민생을 외면하고 있는 사이 국민들은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면서 점점 우리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정치권을 대변되는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은 신뢰 회복을 위해 어떤 행보를 보여야할 지 명확해지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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