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재발견⑪ 중구 중촌동 옛 대전형무소 골목
1915년 독립투사 가뒀던 옛 형무소 안창호·윤봉길·여운형 등 옥고치러...지금 남은 것은 위태롭게 선 망루뿐
평화공원 거대한 반공애국추모탑 수천명의 무고한 이들이 학살된 현장...일제강점기·근현대사 아픔 고스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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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은 과거의 상처가 드러난 곳이기도 하다. 이 상처는 높다란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찬 삶의 터전 사이에서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는 듯 비죽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중구 중촌동 선병원 앞 옛 대전형무소 골목이 바로 그렇다. 불과 200m도 채 안 되는 골목이지만, 일제강점기부터 펼쳐진 근현대사의 모든 아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병원 앞에서 정면을 보면 대전출입국관리사무소와 자유회관 사이 이질적인 건축물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이곳저곳 바스러져 버릴 듯한 모습으로 위태롭게 선 수직건축물은 다름 아닌 ‘망루’다. 1915년 지어져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가뒀던 옛 대전형무소의 잔재다.

본래 동서남북 4곳 방향의 귀퉁이를 지켰으나, 지금 남은 것은 남쪽 망루뿐이다.

망루가 속한 옛 대전형무소에서는 수많은 뜻 있는 이들이 옥고를 치렀다. 도산 안창호 선생을 비롯해 윤봉길, 여운형, 김창숙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을 거쳤다.

해방 후 전개된 민주화 운동 와중에는 고암 이응노 화백과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등이 독재의 서슬 퍼런 압제를 참아냈던 공간이다.

한 때는 중촌동 현대아파트 일대 전부를 덮었을 만큼 큰 면적을 자랑했지만 1960년대 말 도시 확장으로 몇몇 요소만을 남기고 모두 헐렸다. 남겨진 다른 요소를 찾아 출입국사무소 반대편으로 향하면 이내 평화공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녹음 짙은 나무들과 벤치가 어우러진 보통의 공원 같지만, 조금 더 들어가면 거대한 추모탑이 보인다. 평화공원이 바로 학살 현장임을 보여주는 증표다.

이 추모탑은 ‘반공애국추모탑’이라는 이름을 지녔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좌우익을 가리지 않고 수천명의 무고한 이들이 스러진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학살현장은 바로 추모탑 뒤편에 자리 잡은 우물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따르면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 9월 대전형무소 등지에서 우익인사 등 1557명의 학살이 확인됐다. 이 중 많은 수가 이 우물 근처에서 죽음을 맞았고, 일부는 우물로 던져졌다. 몇몇은 목숨을 건지기도 했지만 수없이 많은 사람의 피가 흘렀다.

골령골과 마찬가지로 이념의 차이에 따른 민족상잔의 비극이 서린 공간이다. 이 때문인지 기자가 우물을 찾은 시점이 오전 11시임에도 불구, 우물에 가까이 다가서는 것만으로도 등가에 냉기가 서렸다.

우물터를 벗어나 다시 추모탑 앞쪽으로 나서면 60년 이상 수령으로 추정되는 ‘왕버들’이 양팔 벌려 사람들을 맞이하는 게 눈에 띈다. 형무소가 헐리는 과정에서 연못가의 나무를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나무의 별칭은 평화의 나무다. ‘다름이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담겨있다고 한다.

김영준 기자 kyj85@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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