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혹자는 나를 워커홀릭이라고 말한다. 다분히 자의적인 해석들인데 속내를 보면 칭찬이 아니라 비난이다. 그런데 뭐를 그렇게 열심히 했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뛰지 않고 걸었다는 점이다. 걷는 것은 느리지만 항상성(恒常性·한결같은 성질)이 있다. 반면 뛰는 것은 빠르지만 매우 유동적이다. 변심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누구나 목적지를 향해 뛰고 걷는다. 하지만 막상 그 목표에 다다르면 손에 남는 건 허무뿐이다. 돌아보건대,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난 늘 후회를 거듭하며 살았다. 그 '후회'를 후회하기 시작한 시기는 너무 이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은 때였다. 그때부터 그림자처럼 걷는다. 그림자는 빛을 부정하며 홀로 견딘다.

▶노동자들은 아침 9시부터 기계가 멈출 때까지 일한다. 주5일제 도입이후 우리 삶은 어떻게 변했나. 통계자료에 따르면 일은 줄고 잠은 늘었다고 한다. 그런데 실상이 그런가. 주5일제는 하루를 더 놀게 한 것이 아니라, 적은 돈을 받고 하루를 판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자 스스로 하루를 매도한 셈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돈을 더 받고 주6일제 근무를 자처하기도 한다. '하루'를 팔고 사는 건 마치 매춘(賣春) 같아서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불편하다. 그래도 등 따습고 배부르려면 '하루'어치의 절망을 살 수밖에 없다.

▶큰아들이 고교시절 3년 동안 사교육비로 쓴 돈은 3420만원이다. 한 달 영어 과외에 40만원, 수학 25만원, 국어에 30만원이 들었다. 그런데 정부가 발표한 사교육비는 한 달에 고작 24만2000원이란다. 이름하여 ‘바보 통계’다. 여기에 중식비도 3년 간 432만원이 들어갔다. 이제 작은아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앞으로 3년간 또 3420만원+432만원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졸업까지 자녀 한 명 키우는데 2억6000만원이 든다. 더 열심히 살 수밖에 없다. 이제 아무리 용을 써도 정년까지는 '한 자릿수'밖에 남지 않았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도록 하는 게 신의 뜻이었다면 신은 분명히 망했다. 해가 없어도 노동자의 밤은 환하다. 어둠이 짙으면 새벽이 가깝다는 뜻이다. 어둠을 뚫고 지나가는 바람은 밝다. 어둠속을 지나가며 그 어둠에 묻어있는 빛까지도 껴안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잘나가던 이도 언젠간 무대에서 내려온다. 내려올 때 잘 내려와야 한다. 세상 위를 걸어가자면 싫어도 좋은 척, 힘들어도 안 힘든 척해야 할 때가 있다. 모든 건 지나간다. 한번 왔다가는 '가불인생'의 기나긴 돌려막기는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이다. 한 번의 기회를 잡기 위해 수면 아래서 열심히 발버둥치는 오리의 발처럼 설령 ‘그림자’의 삶이어도 발장구를 칠 수밖에 없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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