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OT서 응원단에 반해 응원의 길로, 1999년 한화 한국시리즈 우승에 팬 돼
2006년부터 9년간 이글스 응원 한우물, 8회 육성응원·선수 응원가 직접 만들어
단장과 치어리더의 썸 있을수 있는 일, 대한민국에서 10개뿐인 직업에 자부심
응원은 팬들 목소리 전하는 메신저역할

▲ 한화 이글스 홍창화 응원단장이 응원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노진호 기자
한화는 그동안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많았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동안 다섯 차례나 꼴찌를 했다. 하지만 한화 팬들은 기꺼이 ‘보살’이 됐으며 참고, 또 참았다. 한화는 올 시즌 꼴찌에서 탈출했음은 물론, 가을야구까지 바라보고 있다.

'화나이글스'로 불렸던 한화가 '마리한화'(경기를 한번 보면 마약처럼 빠져든다)로 변신한 것이다. 독수리 둥지에서 ‘창화信’으로 불리며 맹활약하고 있는 10번 타자들의 대장 홍창화(36) 응원단장을 만났다.

-한화가 180도 달라졌다.

“그렇다. 9년 간 이글스 응원단장으로 있었는데 확실히 달라진 게 느껴진다. 예전엔 초반부터 실점하면 '오늘도 졌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일찍 포기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엔 아무리 점수 차가 벌어져도 질 것 같지 않다. 그만큼 역전승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올시즌 승리 가운데 절반이 짜릿한 역전승일 정도로 매 경기 극적인 승부를 연출한다. 한화팬이 아니더라도 흠뻑 반할만하다. 정말 응원할 맛이 난다.”

-감독과 선수덕분인가, 아니면 응원 덕택인가.

“삼위일체라고 본다. 올해는 분위기 좋은 경기가 워낙 많아졌다. 선수들의 표정에서 그동안 보였던 야구 열등생의 모습이 사라졌다. 어떤 상대를 만나도 밀리지 않는 끈끈한 승부근성이 생겼다. 설사 지더라도 악착같이 뛰면서 점수를 내려고 하는데 누가 재미없다고 하겠는가. 관중수가 15% 가량 늘어났다.”

-팬들의 분위기도 달라졌겠다.

“지난해만 해도 응원할 때 자리에 앉아있는 팬들이 많았다. 요즘엔 그냥 들썩들썩한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굉장히 열정적으로 변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파도타기 응원도 예전 같으면 두 세 바퀴 돌고 끝났지만 최근엔 8바퀴까지 돈 적이 있다. 파도타기는 분위기가 정말 좋아야 나오는 응원이다.”

-응원단장 일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대학(한체대) 오리엔테이션 때 천마응원단의 모습을 보고 반했다. 그 즉시 응원단에 들어갔고 단장까지 지냈다. 2005년 남자농구부터 시작했고 2006년부터 지금까지 9년째 이글스 응원단장을 맡고 있다.”

-그런데 왜 한화였는가.

“대학 응원단 후배 한명이 한화 골수팬이어서 관심을 갖다가, 1999년 한화가 한국시리즈 우승하는 것을 본 뒤로 팬이 됐다.”

-한화가 우승하면 결혼한다고 말했다가 4강으로 바꿨더라.(웃음)

“나이가 찼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 싶다. 여자친구도 있다.”

-응원가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직접 만든 응원가가 수십곡이라던데.

“대표적인 게 ‘한화 신경현 최고의 포수~’로 시작하는 '마초맨'인데 중독성이 강하다. 보통 응원가는 남자가 부르는데 이 노래는 치어리더가 직접 불러 화제였다. 개인적으로 정근표, 강경학 응원가를 좋아한다. 강경학은 말도 한번 해보지 않은 사이지만 자신의 SNS에 응원가가 마음에 든다고 써놨더라. 올해 새로 만든 응원가만 20곡이 넘는다.”

-어떻게 만드나.

“유행가까지 1000곡 이상 들어본 것 같다. 물론 영감만 얻는 게 아니다. 선수들의 특징도 잘 살핀다. 가령 김경언 선수는 구레나룻이 굉장히 멋지기 때문에 '이글스의 구레나룻'라고 지었다. 4번 타자는 웅장해야 한다든지, 이런 특징을 잡아내고자 노력한다. 심지어 지인의 어머님이 찜질방에서 들은 노래가 좋다고 알려줘 응원가로 만든 노래가 ‘나는 행복합니다’이다.”

홍 단장은 공수교대 시간에 색소폰을 연주하기도 한다. 일본프로야구 지바 롯데 마린스 응원단장이 트럼펫을 연주하는 걸 보고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최·강·한·화 8회 육성응원을 만들었다.

“롯데에 신문지 응원이 있듯 한화만의 독특한 응원이 필요했다. 그래서 만들었다. 팀이 질 때도 이길 때도 팬들을 하나로 모아 선수들에게 힘을 싣는 퍼포먼스는 분명히 필요하다.”

실제 한화는 8회 공격에서만 음악을 끄고 응원도구를 내려놓은 채 맨손과 육성으로만 일사불란하게 응원한다. 한화에게 있어 '약속의 8회'라는 의미다. 원정 응원단이 파견되는 문학구장이나 목동구장, 잠실구장에서도 홈팀 관중들을 압도해버리는 엄청난 위엄을 자랑한다.

-응원단장 수명이 짧다는 시선도 있다. 미래에 대한 대비도 필요할 텐데.

“몸 쓰는 직업이라 40대 넘어서는 힘들 것 같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응원단장은 직장이 아니기때문에 4대보험도 안된다. 시즌계약(연봉)을 하지 않고 한달에 응원하는 경기수를 따져 수당을 받는다. 구단이 아니라 이벤트 업체에서 돈을 받는다. 한마디로 비정규직이다.(웃음) 체육교사 자격증을 딸 것이다. 또 스포츠마케팅, 이벤트 일도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응원단장일에 자부심을 느낀다. 대한민국에서 10개밖에 없는 직업 아닌가.”

홍 단장은 야구 시즌이 끝나면 겨울 스포츠(남자·여자농구, 남자·여자배구) 응원단장도 맡는다. 홍 단장이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응원단장 처우는 상당히 야박하다. ‘극한직업’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일은 힘든 반면 박봉에 시달린다. 일각에서 응원단장에게도 FA제도를 적용시켜야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허튼 말이 아니다. FA제도는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다른 팀과 계약을 맺어 자유로이 이적할 수 있게 만든 제도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연봉이 오른다. (그에게 월급을 물었지만 밝히지 않았다)

-치어리더와 응원단장이 '썸 탄다'는 풍문도 있던데.

“응원단장과 치어리더는 소통이 중요하다. 응원가나 안무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주고받아야 하니까 친해질 수밖에 없다. 나도 20대 때 스캔들이 난 적이 있다. 절대 나쁜 짓이 아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치어리더도 고충이 많다고 들었다.

“왜 TV에선 박기량(롯데 자이언츠·울산 모비스·구리 KDB생명 위너스), 김연정(NC 다이노스·창원 LG 세이커스·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얘기밖에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수억대를 버는 치어리더다. 우리 한화에도 여섯명의 미녀 치어리더들이 있다. 얼마나 열심히 응원하는데….”

-술은 자주 하나.

“몸에서 잘 받지 않아 즐기진 않는다.”

-대전에 사는가.

“집은 경기도 화성시 동탄에 있다. 한화 홈경기 땐 응원단과 함께 대전 시내 숙소에서 지내고, 수도권 원정 때는 가급적 화성 집에서 잔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곤 집에서 TV로 야구를 본다. 몇몇 팬들이 현장에서 응원가 부르는 것을 보면 뿌듯하고 고맙다.”

-원정 경기도 무조건 가나.

“서울 목동(넥센), 잠실(LG·두산) 구장엔 평일 원정을 간다. 인천(문학)과 수원엔 주말 원정만 참여한다.”

-개인적으로 친한 선수가 있나.

“안영명과 친하다. 김태균 선수와는 친해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응원단에 뽑히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오디션을 보면 된다.”

-김성근 감독의 인기가 대단하다.

“감독님이 어쩌다 나오면 함성 소리가 더 커진다. 모자라도 벗고 흔들면 관중들이 열광한다. 권혁, 김경언, 박정진, 김태균, 이용규가 인기가 많다. 특히 권혁 선수가 등판하면 관중석에서 난리가 난다.”

-응원단상의 의미는.

“응원은 선수들에게 수많은 팬들 목소리를 모아주는 메신저라고 생각한다. 응원단상은 절대 내 자리가 아니다. 나만 빛나는 게 아니다. 팬들은 즐겁게, 선수들에겐 힘이 되기 위해 존재한다.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중시하는 건 '하나됨'이다. 인간적으로 다가가자는 생각이다. 승패를 떠나 야구를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

-밉상 팬들도 물론 있겠지.

“응원단과 호흡하지 않고 따로 노는 팬들이 있다. 응원이란 관중과 선수들이 호흡하는 행위다. 몇몇 사람이 음주로 인해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심한 욕을 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먹던 맥주를 그라운드 안으로 던지는 것도 봤다. 물론 그들도 한명의 팬이다. 존중받아야한다.”

홍 단장이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일각에선 ‘보문산 호루라기’라는 별명을 가진 극성팬 얘기를 자주 한다. 그는 응원단과 호흡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문제는 경기에 방해를 줄 만큼 혼자서 겉돌고 있다는 점이다.

-응원단상을 내야(1루)에서 외야로 옮겼다. 응원해보니 어떤가.

“장단점이 있다. 내야에 있을 땐 선수들의 디테일한 움직임까지 읽고, 볼인지 스트라이크인지 바로바로 알 수 있었는데 외야는 반박자 느리게 인지된다. 물론 응원 분위기는 외야도 마찬가지다. 또 전광판을 보고 정보를 확인하는 것도 사각지대라 조금 힘들더라. 그래도 팬들이 구호나 동작을 잘따라해주며 호응해준다.”

-팀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

“외출할 때는 물론 심지어 해외여행을 갔을 때도 한화 모자를 챙겨 쓰고 다닌다. 몇해전에는 사비를 털어 한화의 호성적을 기원하는 고사까지 지냈다. 이왕이면 내가 응원단장을 하고 있을 때 한화가 우승하는 것을 보고 싶다. 물론 응원단장을 은퇴해도 한화를 계속 응원할 것이다. 내 인생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팬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경기는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한결같이 구장에 많이 와줬으면 좋겠다.”

인터뷰를 끝내며 굳은살 박힌 손을 잡았는데, 어쩌면 응원하느라 목에도 굳은살이 박혔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창화信’은 ‘창화神’으로 불려도 무방할 만큼 야구를 사랑하고 한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가 가을야구에서 신바람 나는 응원을 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인터뷰 하던 날, 이글스는 잘나가는 NC를 상대로 대역전승을 거뒀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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