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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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라는 TV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나영석 PD를 인터뷰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그는 퉁명스럽게 "누구냐"고 물었다. '○○신문사'라고 하자 이내 비열한 신호음이 울렸다. "뚜뚜뚜뚜…." 나PD가 전화를 뚝 끊어버린 것이다. 수화기 너머의 그는 웃음기조차 말라있었다. 청주가 고향인 PD이기에 나름 기대를 했건만, 왠지 기분이 더러워지는 느낌이었다. 최근 영화 '극비수사'를 봤다. '삼시세끼'에 출연했던 배우 유해진이 주인공이었다. 그도 청주가 고향이다. 세 끼를 꼬박꼬박 게걸스럽게 먹을 것 같은 외모와는 달리 연기는 출중했다. 그는 겸손의 대명사다.

▶나영석 PD의 '예능'은 한마디로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진중한 고민이다. 하지만 신랄하게 말하자면 그의 예능은 불친절하다. 밥숟가락 하나 툭 던져놓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네멋대로 해먹으라는 식이다. 이 웃음 코드는 사람답지 못하다. 아니, 사람답지 못하게 만든다. 연예인을 ‘배부른 돼지’로 만들고 정작 본인은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남는 절묘한 폄훼다. 유해진이 김혜수와 핑크빛 사랑을 시작했을 때 장삼이사들은 비웃었다. 아니 믿지 않았다. 두 사람의 외모가 '미녀와 야수'처럼 너무나 언밸런스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사람의 매력은 외모가 아니라 ‘따뜻한 마음’임을 증명하자 모두들 꼬리를 내렸다. 잘났건 못났건 하루 네 끼, 다섯 끼가 아니라 '세 끼'를 먹을 뿐이다.

▶90년대 요리방송이 뜬 것은 먹고 살기 어려워 '눈요기'가 필요했기 때문이고, 지금은 먹고살만해지니까 그냥 '요기'가 필요해진 것이다. 돈 많고 가문 좋은 백마 탄 왕자, 여배우와 결혼한 갑부 외식사업가, 사학재단 이사장인 '백주부'(백종원·충남 예산)가 인기다. 백종원은 새마을식당·원조쌈밥집·본가·한신포차·빽다방 등 36개의 프랜차이즈와 619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레시피는 '대충' 만드는 것이다. 밥숟가락 하나 툭 던져놓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네멋대로 해보라는 식이 아니라, 본인이 망가지며 삼류재료를 가지고 일류 요리를 만든다. 그 빈틈이 입맛을 당긴다. 그래서 그의 요리에서는 '밥집' 냄새가 나지 않고 '집밥' 냄새가 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레시피는 내가 뭘 좋아하느냐 보다, 누가 뭘 좋아하느냐가 중요하다. 때론 양파처럼 눈물 나게 하고, 때론 막 섞여도 어울리는 라면수프(MSG)같은 사람이 시대가 요구하는 호감형이다. 배추는 소금을 만나야하고, 명태는 살을 에는 추위를 만나야 제맛을 낼 수 있다. 굳이 파릇파릇한 채소가 아니어도, 굳이 펄떡 펄떡이는 고등어가 아니더라도 그냥 좋은 '양념'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인생 레시피에서 중요한 건 ‘대충’ 살더라도 ‘제대로’ 사는 일이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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