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엘리베이터 방범용 폐쇄회로(CCTV)가 게슴츠레 눈을 뜨고 꼬나본다. 아파트 현관을 나오니 또 다른 CCTV가 동서남북에서 열심히 몽타주를 스캔한다. 네거리 신호등 앞에서도, 지하철, 버스, 공공화장실, 마트에서도 여지없다. 너도나도 장착한 차량 블랙박스도 행인의 동선을 훔쳐보며 캡처한다. 밤새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난 네가 한일을 알고 있다'며 무작정 용의선상에 올리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 평균 80회 넘게 감시카메라(전국 450만대)에 찍힌다. 도둑놈, 강도, 성추행범을 잡겠다고 만들어놓은 '덫'에 모든 사람이 발가벗겨지고 있다.

▶감시의 눈길로 가득 찬 도시에 인권은 요원하다. 이리 둘러봐도 찰칵, 저리 둘러봐도 찰칵, 특정한 시간에 그곳을 지나갔다는 이유만으로 의심의 대상이 된다는 건 억울한 일이다. 이는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은 사생활침해다. 전국 방범용 CCTV가 2년 새 4배 이상 늘어났지만 범죄는 조금 줄어들었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불거져 나오는 풍선처럼 CCTV를 달면 범죄는 오히려 딴 곳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일은 차(車)를 보호하고 차 주인을 변호하기 위해 탄생한 블랙박스가 되레 차(車) 주인을 블랙홀로 빠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차 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기록하기 때문에 ‘본인의 나쁜 짓’이 들통 날 수도 있다. 마치 ‘내가 한 일을 내가 고발하는 형국’이다.

▶세상은 CCTV, 휴대폰, 신용카드, GPS시스템, 교통카드, 스마트폰 문자, 이메일 대화를 통해 훔쳐보고 엿듣는다. '지난여름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죄다 들킨다. 더더구나 우린 스스로 프라이버시를 버리고 있다. (알고 싶지 않은데도) 저녁에 먹은 음식메뉴를 페이스북에 친절하게 올려놓고 모두들 보라고 권유한다.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지 않은데도) 카카오스토리에 자세하게 올려놓고 공유하길 바란다. 누가 더 '좋아요'를 받는지 경쟁까지 한다. 결국 프라이버시를 지켜달라고 하면서도 프라이버시를 깨는 건 본인인 셈이다. 인간이 만든 게 모두 인간의 편은 아니다. 인간이 만든 게 인간을 지배할 수도 있다.

▶자판 몇 개만 두드리면 누구라도 홀라당 벗길 수 있는 세상 속에서 ‘사생활 보장’을 명시한 헌법17조의 목숨은 간당간당하다. 프라이버시는 '모자이크' 처리한다고 가려지지 않는다. 어쩌면 ‘세월호’나 ‘메르스’ 사태도 집단 관음증의 변형일 수도 있다. 마치 남의 불행을 아파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속마음은 남의 불행이 내 불행이 아니기를 바라는 심리 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CCTV는 사람들의 눈이다. 집단관음증에 사로잡힌 공공의 사람들은 눈을 통해 상대방의 몸과 마음을 샅샅이 엿보고 생체인식 소프트웨어에 저장한다. 그리고 말한다. "난,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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