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동행취재- ‘길위학교’ 꿈과 목표를 위해 달리는 아이들
위기청소년 치유하는 ‘길위학교’
지리산 11박 12일 700리 걷기
신체적 한계 극복·내면 다스리기
상처 보듬고 꿈 채워 넣으며 변화

▲ 22일 '길위학교'에 참가한 동행자와 위기청소년들이 경남 하동군 청암면 하동호를 바라보며 새로운 마음가짐을 다지고 있다. 이정훈 기자
어떤 이들은 ‘길 위의 아이들’이라고 했다. 비행청소년, 불량 학생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갈 곳도 없었고, 세상도 미웠다. 이유없이 화도 났고, 폭력이나 탈선으로 풀었다. 그 아들은 지금도 길 위에 있다. 그러나 이전과 달랐다. 지리산 둘레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지나온 날을 씻어내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있었다.

22일 낮 12시. 체감온도 35℃에 달하는 뜨거운 햇볕아래 경남 함양군 휴천면에 위치한 지리산 5둘레길.

대전가정법원과 전국 5개 가정법원에서 위기청소년 치유프로그램 일환으로 11박 12일 일정으로 지리산 둘레길 700리를 걷는 ‘길위학교’에 참여한 청소년들의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지난 18일 대전을 출발한 6일째다. 충청투데이 취재진은 지난 21일부터 2박 3일 동안 이들과 함께 걸었다.

김한국(19·가명) 군은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한 10명의 아이들 중 가장 맏형이다. 며칠째 산을 타고 있지만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걸어온 길이 많아질수록 얼굴은 해맑아졌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 포기하면 나중에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아요. 끝까지 해낼 거예요.”

한국이는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우듯 말했다.한국이의 겉 모습은 어른인척 행동하지만 그 또래의 보통 학생 모습과 같았다. 하지만 밝은 모습 아래에 아픈 상처를 숨기고 있었다.

그는 2002년 월드컵으로 온 국민이 환호와 열기로 떠들석했던 당시 씻을 수 없는 아픈 상처를 입었다.

부모님의 잦은 다툼으로 인해 이혼이라는 슬픔을 경험해야 했고, 형, 여동생과 함께 할머니댁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혼 뒤 재혼했지만 양육비는 커녕 자주 만나주지도 않았다. 가정에서 상처를 입은 한국이는 불량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어느새 집단 폭행과 절도 등의 5번의 전과를 저지르게 됐다.

중학교 시절엔 달리기를 좋아해 육상선수로서의 꿈도 키웠지만 친구들의 집단 괴롭힘 등을 버티지 못했다. 장기간 가출해 전국을 떠돌며 또래들과 무절제한 삶을 지속해왔다.

청소년 쉼터에도 들어가봤지만 의지력이 약해 곧 나오기 일쑤였다.

그는 가정에서 외로움을 많이 느껴 그러한 생활을 반복한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나 한국이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변화하고 있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반성하는 모습이 여러 번 목격됐기 때문이다.

“제 발로 이곳까지 걸어온 것이 너무 뿌듯해요. 이 때까지 남의 물건을 훔쳤던 제가 이해가 안 되요.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고 내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이번 기회에 알게 됐어요.”

한국이는 길을 걸으며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고 수줍게 말을 꺼냈다. 최초로 노래하는 마술사가 되고 싶다는 게 앞으로 그의 소망이라고.

한국이는 “꿈이 있어야만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 할 것 같아요”라면서 먼 훗날 마술쇼에 기자를 초청하겠다고 약속했다.

매일 30㎞ 가량을 걸으며 발에는 물집이 잡히고 터지기를 반복하고 얼굴은 검게 그을렸지만, 아물 것 같지 않던 한국이의 마음속 상처에는 조금씩 아물며 딱지가 생기는 듯 했다.

동행자와 아이들은 서로 손을 잡아주거나 뒤에서 밀어주며 완주 의지를 불태웠고, 밤이면 대화를 통해 소년들의 상처 난 마음을 다독여줬다.

프로그램을 함께 하고 있는 김원세 대전시청소년남자쉼터 소장은 “이들이 가정환경과 성장배경 등이 불우해 비록 범죄의 늪에 빠졌었지만, 짧고 강렬했던 길위학교를 계기로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 것 같다"며 "길위학교가 더욱 확산돼 방치되고 소외된 청소년들의 삶에 희망을 불어넣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classystyle@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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