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2005년 여름, 이란 루트사막의 기온은 섭씨 70.6℃까지 치솟았다. 이곳은 소금호수가 말라붙어 생긴 사막형 분지다. 과학자들이 생우유를 병에 담아 놔뒀지만 상하지 않았다. 너무 더워 박테리아가 번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한낮 기온이 30℃를 넘기면서 푹푹 찐다. 나무들도 쓰러지고 싶어 가지를 비틀고, 세상의 지붕은 땡볕에 익어버렸다. 이런 불볕에 마스크 쓴 이들이 거리마다 넘쳐난다. 눈만 빼고 폭 감싸고 다니는 건 이열치열이 아니라 생존본능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공포가 벌써 3주째다. 저마다 심장이 놀라고 폐 마디가 쑤신다. 더더욱 가슴 아린 건 인간의 참상이다. 흉흉한 개인주의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보균과 멸균 사이에서 마음을 도륙하는 것이다. 육체의 병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마음의 병이 사람을 죽이고 있다.

▶“경고한다, 경고한다. ○○번 환자가 병원을 탈출했다. 자가 격리자가 시내를 마구 휘젓고 있다. 14번 슈퍼전파자가 63명에게 메르스를 옮겼다. 133번 환자는 4차 감염됐고, 76번 환자는 구급자 운전자를 전염시켰다”며 사람이 사람에게 번호를 매기고 있다. ○○환자는 인간이기 이전에 감염자일 뿐, 인간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환자라고 명명되는 순간, 우리 사회는 그를 마음껏 힐난하며 ‘싸돌아다니지 말라’고 몰아붙인다. 비감염자와 감염자는 어제까지만 해도 같은 종족이었는데, ○○의 넘버가 붙는 순간 그냥 포유류다. “사람이, 이제 사람이 아니므니다….”

▶"경성에서 독감으로 사망한 사람이 268명인데 그중에서 조선 사람이 119명이다. 서산에만 8만명의 독감 환자가 있고, 예산·홍성서도 야단이다. 감기로 사망한 사람이 2000명이나 된다." 일제 식민치하이던 1918년 매일신보의 기사다. 당시 인구의 38%인 758만명이 독감에 걸려 14만명이 사망했다. 바람처럼 훅 하고 왔다가 소리없이 홀로코스트로 보내는 ‘바람’의 성정은 비열하다. 등교하는 아이의 뒷모습이 불안하고 장보러 가는 아내와 연로하신 부모님이 염려스러운 건 남은 생애의 예방접종이다. 옆에서 기침만 해도 도끼눈으로 죽일 듯이 쳐다보는 이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예방주사다. 나쁜 마음은 전염되니까.

▶메르스 예방책 중 첫손으로 꼽히는 손 씻기는 타인의 흔적을 지우라는 행동지침이다. 손을 씻는 동안 머릿속에 떠올리는 대상은 인간이 아니라 접촉하지 말아야 할 감염자다. 병균을 없애는 동시에, 타인의 존재감마저도 없애기 때문이다. 전염은 타인에게서 타인에게로 옮겨지며 불어난다. 감염된 자신도 누군가에게서 전염된 것이다. 우린 무언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 지금 메르스가 창궐하는 것은 병원이 뚫린 게 아니라 국가가 뚫린 것이다. 국민이 뚫은 게 아니라, 국가가 국민의 마음을 뚫은 것이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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