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유천동.

버드나무가 많이 있는 천(川)이라하여 유등천이라 하며, 버드나무가 많은 천(川)이 있는 동네가 유천동이고, 그리하여 불러지는 이름 버드내이다. 유천동 산제당을 가는 길에 특이한 걸 느낄 수 있었는데, 빨간색과 하얀객의 깃발이 꽂혀 있는 집이 거짓말을 보태서 한 집 건너 한 집이었다.

그렇게 많은 점집이 모여있는 곳은 처음이다. 동네가 온통 하얗고 빨간 깃발로 펄럭이고 있었다. 그래서인가 옛날 산신제를 지내던 곳이 바로 유천동 동네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다.

바로 유천동산제당(山祭堂)이다. 유일하게 벌판에 있는 당(堂)으로 지금까지도 제례의식의 변화가 없이 그대로 잘 이어져오고 있단다. 동네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있어 위치가 높았다는 감을 지금은 전혀 느낄 수 없지만 그래도 엣날엔 벌판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었다고 한다.

1997년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제 제4호로 지정된 유등천 산신제로 보문산 산신을 모시는 유천동 산신제는 16세기 무렵인 조선중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매년 동짓달 초사흘에 지내는 이 산제(山祭)는 마을 모두가 참여하는 동제(洞祭)로, 주민의 안녕과 태평을 기원하는 마을의 공동신앙이다. 당집이 있는 이 곳은 예전에는 논밭으로 둘러싸인 비교적 높은 둔덕으로,옆에는 늪이 있어 물이 항상 솟아 올랐으며 이웃해 있는 상평과 중평마을을 굽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주위의 옛모습은 다 사라지고 2평 남짓한 당(堂)과 수백년생의 소나무 한그루만 남아있다. 신성시하는 금줄이 쳐져있는 당(堂)과 소나무를 제외하면 거의 공간이 없다고 해야 정확하다.

2평 남짓한 당(堂)의 크기때문인지 아니면 요즘 시세에 대한 땅값이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둘러보기에도 협소하기만한 작은 공간이었다. 당(堂)집은 문에 자물쇠가 걸려있기는 했지만 이또한 형식적인 걸로 보였다.

자물쇠를 올리니 문이 열렸는데 마주하는 곳에 산신도가 모셔있었다. 산신도에는 백발의 긴 수염을 늘어뜨린 산신과 호랑이가 깊은 산과 계곡의 큰 소나무 옆에 앉아있었다.

주민들에 의하면 산신제가 약450년전부터 지내왔다고 전하나 문헌으로 남겨진 것은 없다고 한다. 지금은 동짓달 초사흘이 당제를 지내고 있으며 당(堂)옆에는 물이 항상 솟아올랐다고 한다.

물이 솟아오르던 곳을 지금은 옹달샘으로 만들어 놓았다는데 물은 없고 큰 항아리 크기로 자그마한 게 거의 형태만 유지해 놓은 듯 보였다. 보문산의 좋은 기운을 이어받아 마을의 번영을 기도하던 유천동 산제당(山祭堂)은 주민들의 단결과 화합을 도모하는 마을 공동체 의식이다. 대전의 소중한 정신문화이기도 한 산신제를 잘 보존하고 이어받아서 후손에게도 잘 물려줘야 하지않을까 싶다.

대전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새로이 돌아보게 되는 과거와 현재는 지금의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한다.

산다는 건 지금을 느끼는 것, 나의 지금에 대한 작고 큰 생각꾸러미를 던져준 날 이었다.

청송 http://blog.naver.com/sanha2323

(이 글은 6월 4일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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