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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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 愼言牌와 承命牌
甲子士禍(30)


시정기에 성종의 말이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과인이 비록 집안 일을 잘 다스리지 못한 소치이지만 국가의 대계(大計)로 볼 때 어떻게 그런 사람을 국모의 자리에 있게 해서 종묘의 큰일을 받들게 할 수가 있겠소. 과인이 만약 후궁의 참소하는 말에 넘어가 죄 없는 중전을 폐하려고 한다면 천지(天地)와 조종(祖宗)의 영(靈)이 위에서 내려다보실 것이오. 옛날 한나라의 광무제(光武帝)와 송나라의 인종(仁宗)황제가 모두 폐후(廢后)를 하였는데 광무제는 한가지 일을 잘못하였다고 폐후하였고, 인종황제는 작은 잘못이 있다고 폐후하였지만 과인은 그런 것이 아니오. 만약 지금 일찌감치 폐비하지 않으면 후일에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이오. 칠거지악이란 것이 있지 않소. 국모는 무자(無子)하다고 해서 버리는 법은 없지만, 말이 많아도 버릴 수 있고, 시부모에게 불순(不順)해도 버릴 수 있고, 투기를 해도 버릴 이유가 충분한 것이오. 과인이 이제 중전을 폐하여 서인을 만들려 하니 경들의 의견을 기탄 없이 말해 주오."

영의정 정창손이 아뢰기를,

"지금 주상전하께서 중전이 승순(承順)의 도리를 잃어 종묘의 주인이 될 수 없으므로 폐서인하시겠다고 교시하오시니 신등은 어떻게 아뢸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찬성도 반대도 아닌 어정쩡한 말이었다.

그 다음에 발언한 것은 한명회였다.

"신은 심히 우려하옵니다. 전하께서 칠거지악으로 폐비하실 뜻을 말씀하시오니 신으로는 감히 불가하다고 아뢰지 못하겠사옵니다. 다만 중전께서는 사직의 근본이 되는 원자를 낳으셨으니 재고한 후에 처분하시는 것이 어떨까 하옵니다."

반대는 아니하고 찬성에 가까운 말이었다.

왕은 시정기를 읽다 말고 한탄하였다.

"이자들이 이미 다 죽었으니 원수를 어떻게 갚을고!"

다음에 윤필상이 폐비 처분을 찬성한 발언이 기록되어 있었다.

"전하, 사세(事勢)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쩌는 수가 없사옵니다. 전하의 집안 일이오니 신등에게 가부를 하문하실 것 없이 어의(御衣)대로 처분하심이 가한 줄로 아뢰오."

왕은 현기증이 나면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어머니의 원수가 지금까지 버젓이 자기 옆에서 국사를 논한 원로대신 윤필상이었다니!

왕은 시정기를 계속하여 읽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금 대신이니 시종이니 대간이니 하는 신하들은 모두 자기 어머니의 원수일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원수를 갚는다는 것이 생각같이 그렇게 쉬운 노릇이 아닐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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