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옥 칼럼]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목마(木馬)'는 그리스 군이 트로이(터키)에서 위장 전술을 펼친 끝에 승리를 거둔 전술사적인 상징성을 지닌다. 트로이는 당시 그리스 군이 전쟁에서 밀려 철수한 것으로 오판했다. 트로이가 거대한 목마를 성안으로 옮겨 놓고 승리의 축배를 들고 환호작약하는 순간 그 안에 숨어있던 그리스 정예군의 반격으로 멸망하고 말았다. 밀고 밀리는 권력 다툼에서 이긴 것으로 착각하고 한숨 돌리는 사이 미리 계산된 상대측의 암수(暗數)로 전세(戰勢)가 순식간에 반전(反轉)되는 현상을 이른다.

당진항 매립지 관할권 분쟁의 전개 과정을 보면 기원전 1250년 경 '트로이 목마'를 연상케 한다. 지난달 19일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정책 토론회에서의 행정자치부 간부의 발언이 무척 함축적이다. 행자부 중앙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이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다른 토론자의 주장에 대한 대응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의 근거인 지방자치법의 2009년 개정안은 당시 충청 출신 국회의원들이 통과시킨 법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당사자인 충청권이 그 당시 근거법안을 찬성해놓고 이제 와서 왜 시비냐'는 투로 들린다.

당진-평택 간 도계는 1916년 이래 1세기 동안 지도상 해상경계선으로 여겨져 왔다. 관습법적으로 확립된 경계선이 행자부의 이번 결정으로 뒤바뀌는 일련의 과정이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다. 이런 저런 여러 해석을 낳는 이유다. 당진시가 매립지 조성 이래 쭉 10여년 동안 평온하게 관할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었지만 이번에 지방자치법 개정 내용을 적용한 결과 정반대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연유로 해상 매립지에 대해 행자부가 개입하는 근거가 마련된 것인가.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정부 발의 법안에 대해 어떤 파장을 몰고 올 건지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덜컥 통과시켜 줬으니 자업자득인 셈이다. 내 집 앞마당 땅이 앞으로 어떻게 될 건지는 새까맣게 모른 채 자신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개정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나 다를바 없다. 지역이익을 대변하라고 국회의원으로 뽑아줬더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런 결과를 미리 예상하고 있을 그 누군가는 참으로 고소했을 법하다.

언필칭 서해안시대를 맞아 상생의 협력 관계를 앞세워야하는 당진-평택의 처지가 어줍잖다. 오랜 세월 양안 사이 바다를 놓고 땅 싸움을 벌여 온 과정이 그러하다. 평택·당진항의 명칭에 이르기까지 영일이 없다. 1998년 평택 측이 서부두 바다 매립지에 대해 기습적으로 지적(地籍)을 올린 데서부터 양안의 갈등이 본격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2004년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 심판결과 당진측은 평택시에 빼앗겼던 서부두 땅을 되찾았다. 당시 헌재는 지도상 해상경계선을 행정구역 경계선으로 인정해온 관습을 그대로 수용했었다.

앞으로가 주시의 대상이다. 우선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당진 해역이 평택보다 상대적으로 넓다. 하지만 막상 행자부 결정은 그게 아니었다. 매립지의 70%이상을 평택시 관할로 몰아주었다. 그 이유는 문제의 매립지에 대한 행정 효율성, 주민 편의, 지리적 인접 관계 등을 고려한 결과라고 한다. 앞으로 매립이 진행됨에 따라 평택 관할지역이 이보다 훨씬 더 넓어지는 구도다. 지도상으로도 그러하고 실제로 지배 관리하고 있는 충남 해역이라 할지라도 일단 매립만 하면 그대로 경기도에 몽땅 넘겨줘야할 판이다.

향후 몇 년동안 지리한 법리 다툼이 지속될 전망이다. 모든 지역역량을 총동원해서 치밀하게 준비한 덕분에 일단 승기를 잡은 평택 측의 노고가 돋보인다. 충청민의 법 감정은 한마디로 솔직 담백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지방자치 본령에 비춰 이른바 관습헌법적인 인식으로 확장된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토록 2004년 헌재의 행정수도법 위헌 결정당시 동원됐던 '관습헌법의 개념'이 문득 오버랩이 된다. 공수의 처지가 뒤바뀐 충청의 형편이 초라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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