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에서 한국국적 귀화
이름도 대한민국서 따다 지어
전국노래자랑 출연해 ‘유명세’
가수 박상철 도움으로 앨범발표

"공장에서 야근하다 보면 밤새 기계하고 저하고 단둘만 있게 돼요. 엄청나게 외롭죠. 그럴 땐 일부러 트로트를 크게 틀어놨습니다. 힘이 나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한 트로트인데…. 이젠 정식으로 가수 데뷔까지 했네요."

한국에 온 지 15년째. 그의 이름은 '칸'에서 '방대한'으로 바뀌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까무잡잡한 피부의 외국인 노동자는 2010년 한국 국적으로 귀화하면서 이름도 '대한민국'에서 따다 지었다. 20년째인 올해는 이름 앞에 수식어가 붙게 됐다. '트로트 가수' 방대한.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방 씨는 인터뷰에서 "힘들 때마다 트로트를 따라 부르면 기운이 났다"면서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이 이뤄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웃어 보였다.

그는 스무 살인 1996년 한국에 산업 연수생으로 처음 와 경기도 안산의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했다. 그러다 야근 중에 우연히 듣게 된 트로트 한 곡이 그의 인생을 180도 뒤바꿨다. "태진아 선배님 노래였죠. 한밤중에 들었는데도 흥겹고 신이 나서 일이 잘되더라고요. 그날 이후로 방글라데시 노래가 아닌 트로트를 찾아 듣게 되고, 그러다 2009년 'KBS 전국노래자랑'에 나가서 최우수상을 탔죠. 제가 이렇게 될 줄 저도 몰랐네요. 하하."

방 씨는 단숨에 유명인이 됐다. 2010년 영화 '방가방가', KBS 2TV '1박 2일' 등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다. 그는 특히 타고난 노래 실력을 살려 전국 지역 축제를 돌며 마이크를 잡았다. "이주민 가요제는 물론이고 강원도 오징어 축제, 창원 진동 미더덕 축제 등등 안 가본 데가 없죠. 제가 무대에 오르면 사람들이 처음엔 '누구지?' 해요. 피부색도 까맣고 하니까…. 그런 제가 트로트를 쫙 부르면 다들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는 대뜸 '무조건 무조건이야~' '자옥아 내 자옥아~'를 불러 보였다. 유창한 한국어, 걸쭉한 음색, 트로트 특유의 '꺾기' 창법에서 영락없는 '뽕짝' 분위기가 났다.

"사실 트로트와 방글라데시 노래가 비슷해요. 음을 꺾어 불러야 하거든요. 근데 트로트는 좀 더 흥이 나면서도 정감이 있죠. 케이팝, 발라드 다 좋지만 트로트만큼 남녀노소 따라 부르기 쉬운 노래는 없지 않나요?"

그런 방 씨에게도 말 못 할 아픔이 있었다. 다른 가수의 노래를 맛깔 나게 따라 부르면서도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곡이 없는 '노래 없는 가수'였던 것. "돈 문제가 제일 컸죠. 누가 선뜻 이주노동자에게 앨범을 만들어주겠다고 하겠어요? 그러다 가요계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박상철 선배님이 흔쾌히 나서주셨죠. 제게 맞는 곡을 직접 작사 작곡해 주셨어요." 그렇게 탄생한 곡이 '비빔밥'. 디지털 싱글 앨범으로 다음 달 초 정식 발매할 예정이다.

'쓱쓱싹싹 비벼 비벼 비빔밥~ 어머니가 해주시던 비빔밥~'으로 시작해 '우리는 한가족~'으로 끝나는 경쾌한 분위기의 트로트곡이다.

사랑 노래나 댄스곡도 있었을 텐데 왜 '비빔밥'일까.

"비빔밥만큼 한국을 상징하는 음식이 없는 것 같아요. 한데 어울리기 좋아하고, 서로 부대끼면서 살아가고…. 제가 태어난 곳은 방글라데시지만 이젠 한국이 고향 같거든요. 제 피부색은 달라도 한국 사람으로서 꼭 불러보고 싶은 노래입니다."

그는 "이제야 가수라고 떳떳하게 나를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웃어 보였다.

방 씨는 이제 음반을 내고 데뷔한 정식 가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여전히 비정규직으로 빠듯한 삶을 이어가는 이주노동자다.

"충북 음성의 식료품 가게에서 판매원으로 일해요. '알바'죠. 하하하. 하지만 20년 동안 많이 변했어요. 예전엔 차가운 시선이 많았는데 지금은 다들 친절하게 대해주시죠.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이 금방 올 것 같아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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