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규 서예이야기]

한왕(漢王) 유방은 천하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초의 항우에게 몇 차례나 궁지에 몰렸었다.

한(漢)의 3년(BC204) 한왕은 영양에 진을 치고 항우와 대항하고 있을 때 수송로를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 수송로는 항우의 공격 목표가 되면서 몇번이나 습격을 당해 강탈됐다. 한의 서쪽을 항우 땅으로 인정하려 했지만, 항우가 아부(亞父)로 모시는 범증의 반대에 부딪쳤다.

이 때문에 난처해진 것은 한왕(漢王)이었고, 여기에 진평(陳平)이란 인물이 계략까지 꾸몄다.

항우와 범중 사이를 갈라놓으면 된다고 생각해 부하를 초군에 보내 ‘범증은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항우 몰래 한(漢)과 내통하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단순한 항우는 그것 하나로 동요해서 범증에게 알리지 않고 강화 사신을 한 왕께 보냈다. 범증은 격노했다. “천하대세는 이미 결정된 거나 다름없으니 왕 자신이 마무리를 지으시죠. 나는 걸해골(乞骸骨·자리에서 물러 날 것을 청원)해 민간(民間)에나 파묻히기로 하겠소”

항우는 그렇게 하기를 허락했지만, 어리석게도 진평의 책략에 걸려 유일한 명장을 잃었던 것이다. 걸해골(乞骸骨)은 ‘자기의 한 몸은 주군에게 바친 것인데 그 해골은 자기에게 돌려주기를 바란다’라는 뜻으로 결국 늙은 신하가 사직을 원하는 것을 말한다. 이 지구상에는 3만여가지의 직업이 있다. 직업의 경중보다도 자기 직업에 충실해 어떠한 부족함이 없이 정년이나 끝까지 걸해골 없이 최선을 다할 때 가정이나 국가가 더욱 발전한다.

<국전서예초대작가·前대전둔산초 교장 청곡 박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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