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윤형주·김세환·이상벽 '쎄시봉 친구들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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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연합뉴스

"저에게 여러분은 늘 소녀들입니다. 젊은 날 제가 노래 부를 때 소리지르던 소녀들입니다."

쎄시봉의 '천재 감성'으로 불리는 윤형주가 '어제 내린 비'(1974)를 선사한 뒤 가사를 또박또박 따라부르는 관객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50~70대의 여성 관객들은 마치 교복을 입던 여고생 시절, 캠퍼스에서 둘러앉아 노래하던 시절로 돌아간 듯 손뼉을 치며 '까르르' 웃었다. 

25일 저녁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2015 쎄시봉 친구들 콘서트' 투어의 서울 공연이 열렸다. 

이날 무대에는 1960년대 후반 무교동 음악감상실 쎄시봉에서 노래하던 조영남(70), 윤형주(68), 김세환(67)과 쎄시봉의 '대학생의 밤' 코너 사회를 본 MC 이상벽(68)이 무대에 올랐다.

스스로 '가요계 최고령 가수'란 이들은 50년 전 쎄시봉 시절 일화부터 히트곡에 얽힌 사연들까지 유머 섞인 입담으로 소개하며 연륜과 내공을 보여줬다. 

영화 '쎄시봉'의 장면이 배경으로 흘렀지만 이들의 노래와 이야기만 있으면 특별한 무대 장치도, 특수효과도 필요 없었다. 이들의 음색은 고희(古稀) 안팎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힘이 넘쳤다. 

2천300석을 꽉 채운 관객들은 몇 마디에도 노래 제목을 알아맞혔고, 영상에 뜬 가사를 따라가며 노래했다. 곳곳에서 "옛날 생각 많이 나네"란 소곤거림도 들렸다. 부부, 여고 동창이 나들이했거나 모녀가 손을 잡고 오기도 했다. 

막내 김세환이 기타를 메고 첫 순서로 올라 '사랑하는 마음'과 '길가에 앉아서', '토요일 밤에'를 잇달아 선사했다. 

"40년 전으로 타임머신 타고 간 느낌일 겁니다. 주의 사항이 있는데요. 우리 노래는 기타 하나만 있으면 손뼉 치며 부를 수 있는데 그때와 지금의 파트너가 바뀐 분들은 각자 조심해서 상상하세요."

머리가 희끗희끗한 부부들도 서로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김세환이 교회에서 만난 적 있다는 나훈아가 찬송가 부르는 모습을 모창하자 또 한바탕 웃음이 만개했다. 

그가 "데뷔 때부터 노래를 만들어주고 취입 때 기타도 쳐주고 화음도 넣어주던 선배로 70 바라보는 나이에도 보살펴 주는 형"이라고 소개하자 윤형주가 기타를 메고 등장했다. 

자신의 노래를 직접 만들고 부른 윤형주는 히트곡 사이사이 쏟아내는 달변으로 관객을 들었다 놓았다. 

연세대 의대 재학 시절인 1970년대 여름 대천해수욕장에서 만난 여학생을 잡아두고 싶어 30분 만에 만든 노래라는 '조개 껍질 묶어', 육촌 형인 윤동주 시인처럼 별에 관한 가사를 써봤다는 '두 개의 작은 별' 등은 사연이 얽히니 감동도 배가 됐다. 

그는 "집안에 할아버지, 아버지, 육촌 형 등 시인이 많다"며 "형무소에서 옥사한 윤동주 시인의 시신을 안고 나온 사람이 아버지였다"고 가슴 뭉클한 얘기도 더했다. 

'웨딩케익' 등 트윈폴리오(윤형주, 송창식) 시절 노래는 이번 투어에서 빠진 송창식을 대신해 김세환이 하모니를 이뤘다. 

윤형주는 "송창식은 오후 3시 넘어 일어나 4시부터 오른쪽 400바퀴, 왼쪽 400바퀴를 도는 운동을 한다"며 "점심은 밤 9시30분, 저녁은 새벽 1시에 먹으니 함께 하기 어려웠다"고 말해 웃음을 줬다. 

관객의 폭소가 터진 건 윤형주가 만든 1천400곡의 CM송 중 '국민 히트곡' 메들리였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려요'(오란씨), '좋은 사람 만나면/ 나눠주고 싶어요'(롯데껌), '손이 가요 손이 가/ 새우깡에 손이 가요/ 아이 손 어른 손 자꾸만 손이 가'(새우깡)….'

CM송을 합창 한 관객들은 윤형주와 김세환이 선사하는 로큰롤 메들리까지 흥겨운 분위기를 즐겼다. 

이어 조영남이 객석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CCR의 '프라우드 매리'(Proud Mary)를 번안한 '물레방아 인생'을 부르며 관객과 손을 맞잡았다.

"내가 히트곡이 없다는데 당황하지 않고 부르겠다"고 말한 그는 데뷔곡인 '딜라일라'와 대표곡 '화개장터'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그는 '화개장터'에 대해 "이 노래를 만들 때 동서(영호남) 간의 갈등이 대단했기에 지역 화합에 역사적으로 공이 많은 노래"라며 "사실 (새정치민주연합 전 공동대표) 김한길 씨와 함께 만든 노래인데 저작권 개념이 없던 때여서 조영남 작사·작곡으로 돼 저작권은 나 혼자 받고 있다"고 웃었다. 

또 자신의 장례식에서 틀어달라고 했다는 '모란동백'을 부르면서는 실제 장례식처럼 무대와 객석의 조명을 꺼달라는 독특한 주문을 하기도 했다. 

마치 조영남의 장례식에 온 듯 상황극을 펼치며 다시 등장한 윤형주와 김세환, 이상벽은 티격태격하며 50여 년 우정의 단단함을 보여줬다. 

조영남을 향해 '두 번 이혼했는데도 여자 친구가 많다', '히트곡이 없다' 등의 '디스'(Diss)를 해도 개구진 청년들처럼 다 함께 웃어버렸다. 

마지막 곡으로 추억의 팝 넘버 '코튼 필즈'(Cotton fields)로 감성적인 하모니를 들려준 세 사람은 쎄시봉의 또 다른 멤버인 이장희의 곡 '그건 너'를 앙코르곡으로 골랐다. 

'그건 너'가 울려 퍼지자 관객은 기립해 박수를 보냈다.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으며 그 모습을 담기도 했다. 

이상벽은 "매년 봄은 오지만 인생의 봄은 한번 지나면 안 온다"며 "세 가수는 50년 전에 만나 긴 세월을 꾸준히 사랑받는 것에 감동하고 있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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