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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박사’ 윤무부 교수 아들 윤종민 박사 “연애한번 못하고 새만 쫓아다닌 것도, 새박사된 것도 부전자전”

[나재필의 feel]‘새박사’ 윤무부 교수 아들 윤종민 박사
아버지 전속조교로 4년간 탐조활동
美서 10년동안 연구생활하다 박사학위
부모님 반대했지만 새가 좋아 학자의 길
지금도 틈만나면 아버지와 새 관찰나서
어머니 고향 예산서 황새 사육 뜻깊다
세계최초 조류 사이버박물관 건립이 꿈

나재필 기자 najepil@cctoday.co.kr 2015년 04월 21일 화요일 제8면     승인시간 : 2015년 04월 20일 20시 01분
▲ 윤무부 교수(왼쪽)와 아들인 윤종민 한국교원대 황새복원센터 박사가 지난 8일 진천 백곡천에서 황새 '미호'를 관찰하고 있다. 윤종민 박사는 대전에 살고 있다. 윤종민 박사 제공

대한민국 '새 박사'는 자타공인 윤무부(74) 경희대 명예교수다. 그렇다면 그의 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놀랍게도 아들 역시 조류학자의 길을 걷고 있다.

힘겹고 지난한 대물림을 택한 윤종민(41) 한국교원대 황새생태연구원(동물학 박사)을 대전 관평동 테크노밸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마치 탐조를 끝내고 온 듯한 모습에서 '리틀 새 박사'의 풍모가 읽혔다.

-'부전자전'이란 말을 이럴 때 쓰는가보다. 조류학자가 된 계기가 있나.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탐조여행을 다녔다는 말이 거짓은 아닐 거다. 두 분은 데이트할 때도 새 관찰을 했다고 한다. 가족 휴가도 유원지를 가지 않고 새들이 많은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새의 매력에 빠져들더라. 아버지가 재직 중인 경희대 생물학과에 진학했다."

-부자지간보다 센 게 사제지간 아닌가. 많이 불편했겠다.

"그렇다.(웃음) 집에서 부자지간으로 편하게 있다가, 학교만 가면 사제지간이 되니 당연히 신경이 쓰였다. 아버지도 무척 불편했을 거다. 학부생활 4년 동안 연애 한 번 못했다. 데이트 대신 아버지의 전속조교가 되어 주말을 반납한 채 새만 보러 다녔다. 친구들과 대학생활을 마음껏 즐기진 못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 집에서도 조용하고…. 다만 새와 사랑에 빠져 살았으니 어머니는 좀 섭섭했을 거다. 그래도 그런 열정이 더해져 한국조류학이 이만큼 성장했다고 본다."

-어머니의 고향이 충남 예산이라던데.

"아버지는 왜소한 편이다. 때문에 키가 큰 여자를 배우자감으로 원했다. 그러던 중 고종사촌의 소개로 긴 생머리에 키가 큰 예산 아가씨(어머니)를 만났다. 다짜고짜 예산을 오고 가며 매달렸지만 잘 안 풀렸다고 한다. 경찰공무원인 그녀의 아버지(외할아버지)가 가난한 대학원생의 불확실한 미래를 탐탁지 않게 여겨서다. 가짜 약혼사진을 찍어 양가에 돌리기도 했다고 들었다."(웃음)

-조류학자가 된다고 했을 때 반대는 없었나.

"모두가 반대했다. 누가 배고픈 직업을 가업으로 물려주고 싶어 하겠는가. 하지만 공부를 계속하자 많은 도움을 줬다."

윤 박사는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콜로라도 주립대)으로 건너가 10년 동안 새를 연구했다. 이 기간 중 탐조활동에 나선 시간만 합쳐도 3년은 족히 된다. 그는 박사학위를 딴 후 2011년 한국교원대에서 연구 활동을 시작했다.

-아버지의 유명세가 오히려 독자적인 조류학자의 길에 걸림돌은 되지 않나.

"전혀, 전혀 아니다. 우리나라 조류 연구 1세대인 아버지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을까 오히려 부담스럽다. 아버지를 뛰어넘지는 못해도 열심히 할 생각이다."

윤무부 교수는 2006년 뇌졸중에 걸려 일생일대의 시련을 겪었다. 2년여 투병 끝에 '오른쪽 마비'라는 후유증을 딛고 기적적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새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요즘 아버지 근황은.

"여전히 새를 탐조 중이다. 함께 가는 일이 많다. 걷는 것만 약간 불편할 뿐 예전처럼 사진과 동영상도 스스로 찍는다. 전국을 누비며 새들을 관찰하는 아버지를 보면 현장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우리나라에 황새가 거의 없어졌다고 하던데, 어느 정도로 줄어든 건가.

"70년대까지만 해도 텃새였던 황새가 지금은 철새가 됐다. 러시아에서 번식한 이후 겨울에 10~20마리 정도만 찾아온다. 사람들의 사는 공간은 계속 넓어지고, 야생동물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이 그만큼 위협을 받고 있다는 증거다."
▲ 윤무부 교수는 1971년 4월 밀렵꾼의 총에 죽은 마지막 황새 수컷의 표본을 경희대 자연사박물관에 박제해놓았다.
윤종민 박사 제공

-개인적으로 황새랑 뗄 수 없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고 들었다.

"1971년 4월 마지막 황새 암수 한 쌍이 충북 음성에서 발견됐는데 수컷이 밀렵꾼의 총에 맞아 죽었다. 그 수컷 황새를 아버지가 경희대 자연사박물관에 표본으로 박제했다. 그때 황새 부리 길이를 재고 있는 사진이 있는데 그걸 보고 어머니가 반했다고 한다. 그 황새가 없었으면 나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웃음)

수컷 황새가 떠난 후 23년이 흐른 1994년에 암컷마저 농약 중독으로 죽었다. 1996년 한국교원대는 러시아로부터 황새 2마리를 기증받아 황새 복원에 나섰고, 약 20년 만에 인공증식을 통해 개체수를 150여마리까지 늘렸다. 그리고 올해 9월 초 8마리를 자연 방사할 계획이다.

-야생으로 보낼 지역이 어머니의 고향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몰라도 예산에 황새공원이 있고, 내가 재직하고 있는 교원대가 복원사업을 하고 있다. 예산군 대술면은 지금도 서식환경이 좋고 황새가 번식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보존이 잘 돼있다. 새들이 살기 좋으면 사람도 살기 좋은 곳이다."

-황새 '미호'가 교원대 사육장을 탈출했다가 1년여 만에 고향인 미호천 일대로 돌아왔다. 미호의 귀환으로 사육장에서 자란 황새의 야생 적응과 귀소 본능이 확인되면서 국내 황새복원 사업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호는 충북 진천군 농다리 인근 미호천에서 1년생 야생 암컷과 함께 지내고 있다. 평일이면 미호천과 백곡천 합수머리 주변에서 여유롭게 거닐거나 먹이사냥을 한다. 그러나 농다리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주말엔 사람들을 피해 백곡천 상류 쪽으로 옮겨 숨어 지낸다. 특히 낚시꾼들이 백곡천 안에까지 들어가 물고기를 잡을 때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

-서식지 보호를 해야겠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황새는 위험을 피해 높은 나무에 올라가 경계하는 습성이 있다. 그런데 미호천변 일대에는 횃대로 이용할 높은 나무가 없다. 위험한 전신주 위에 앉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낚시행위부터 금지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탐조활동의 어떤 점이 그토록 끌리는가.

"철새들이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도 자신이 태어난 곳을 정확히 다시 찾아가는 능력이 신비롭다. 새들은 내비게이션도 없는데 수천㎞ 거리의 바다를 건너 작년에 왔던 곳을 정확히 찾아온다. 우선 새의 시력은 사람보다 300배, 청력은 200배, 후각은 120~150배나 더 좋다. 까마귀는 40~50㎞ 밖에 있는 동물의 체취를 맡고 위치를 정확히 파악한다. 대단하지 않은가."

-과거 흔하게 보던 새들이 보기 어려워졌다.

"제비, 지빠귀류, 알락할미새, 할미새, 꾀꼬리 등이 많이 사라졌다. 우리나라는 면적이 작고 인구밀도가 높다 보니 새가 머무를 곳이 많지 않다. 농약 살포가 먹이사슬을 통해 호랑나비 유충의 감소로 이어지고, 그 유충을 먹고 번식하는 꾀꼬리, 파랑새, 할미새, 지빠귀류 등이 연쇄적으로 감소했다. 배추나비 애벌레를 좋아하는 휘파람새와 멧새도 비슷한 운명에 처해 있다. 다행히 최근에는 농약류 사용 감소로 제비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 특히 제비는 지난 2만년간 사람과 함께 살아온 종이다. 제비가 사라진 곳에서는 사람도 살 수 없다."

-AI 살처분을 어떻게 보는가.

"AI 발생지역 인근 농장의 모든 가금류에 대해 예방적 살처분을 하는 것은 문제다. 전문가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격리 수용 검토도 하지 않는다. 병 안 걸린 건강한 개체까지 마구 죽인다는 게 상식적으로도 말이 되나."

-술은 하나.

(약간 머쓱한 표정으로)"아버지나 나나 술을 못 마신다. 오히려 그게 연구 활동하는데 도움이 된다. 새벽부터 탐조에 나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떤 새를 좋아하나.

"모든 새가 예쁘다. 편애하지 않는다."

-손자까지 새를 너무 좋아해 3대가 새 박사가 될 것 같다는데. 새 가족의 꿈은.

"세계 최초로 조류 영상 사이버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다. 아버지가 모은 자료가 아파트 한 가득이다. 필름 스크랩부터 풀 HD녹화테이프 수천 개, 새 사진 60만장, 새소리 녹음테이프, 평생 모은 카메라, 망원경, 집음기 등등. 장비를 사는 데 들인 돈만 지금 시세로 치면 30평 아파트 두세 채 값은 족히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료를 공유했으면 좋겠다.

"자치단체든, 공공기관이든 소프트웨어(자료보존)는 신경 쓰지 않고 하드웨어(생색내기)만 신경 쓰는 것 같다.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한국의 조류학도 중국, 일본보다 뒤떨어진다. 자꾸 끌려가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데이터베이스화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윤종민 박사는 인터뷰 말미에 황새 전도(傳道)를 부탁했다. 마치 자유를 꿈꾸는 한 마리 새처럼, 빛깔 좋은 웃음을 남기면서…. 그의 두 어깨가 든든했다.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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