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재필의 feel]최명선 궁골된장 영농조합법인 대표의 귀농일기
농사의 ‘농’자도 모르고 시작한 귀농
3년동안은 개구리울음소리에도 눈물
된장맛 입소문에 아예 법인차려 사업
외아들도 귀농해서 새로운 인생 출발
시골은 천지가 자원이고 돈이고 희망
얼마든지 도시보다 풍요로울 수 있다


▲ 아궁이에 불을 때면 메주콩이 모락모락 봄처럼 익어간다.
어릴 적에 나는, 고생깨나 하던 부모님을 보며 시골에서는 절대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시골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텃밭이 갖고 싶어, 흙의 냄새를 염탐하고 있다. 봄바람이 살랑대던 날, 목련이 한껏 목을 빼자 몽우리 맺은 철쭉도 어깨를 곧장 폈다.

봄 햇살이 한바탕 기지개를 켜니, 침묵했던 들녘이 일제히 깨어난 것이다. 이렇게 좋은 날은 1년에 몇 차례밖에 없다. 귀거래사(歸去來辭)의 계절에 만난 귀농인은 최명선 궁골된장 영농조합법인(충남 논산시 상월면) 대표다.

그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그냥 평범한 전업주부였지만 지금은 수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며 사장님 소리를 듣고 있다.

-마을이 아늑하다. 고향이 여기인가.

"30여년 넘게 대전에서 살다가 귀농했다. 남편은 KAIST에서 정년퇴직했다."

-귀농한 계기가 있나.

"저쪽 산 너머에 중증장애시설인 성모의 마을이 있다. 그곳에 뇌성마비 장애인인 둘째딸(39)이 입소해있다. 주말만 되면 딸을 보기 위해 20년간 이곳을 찾았다. 그런데 남편이 퇴직하고 4남매를 모두 출가시키고 나니 딸아이를 가까이서 자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그때 나이가 얼마나 됐나.

"쉰세 살이었다."

-그리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농사의 농자도 모르던 때였다. 처음 3년간은 눈물의 나날이었다. 도회지 생활을 잊지 못해 차를 몰고 번질나게 드나들었다. 밤의 적막함이 싫었다. 개구리의 울음, 이름 모를 새소리에도 밤잠을 설치고 잠깐만 외출해도 꼬박 꼬박 문을 잠그곤 했다."

-귀농의 제1원칙은 원주민(原住民)들과 친해지기라던데.

"전원생활 한답시고 화초나 기르면서 하릴없이 사는 모습을 시골사람들이 좋게 보겠는가. 어쩌면 꼴불견으로 봤을 것이다. 데면데면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시골에 살려면 시골사람이 돼야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시골에 살면 시골사람이 거저 되는 게 아니다. 토착민들이 매의 눈으로 보더라도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이방인이라는 벽을 깨야하는 것이다. 시골 사람은 거울이다. 자기가 하는 만큼 그대로 돌려준다. 시골에서는 시골스럽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좋다. 농사든 마을일이든 열심히 하면 예뻐해 준다. 일종의 묵계다."(그의 말투는 된장처럼 구수했다)

국내 귀농·귀촌 인구는 벌써 10만 가구를 넘어섰다. 2000년의 5.5배다. 지난해에만 4만 4586가구(8만 855명)가 농촌으로 이주했다. 1950~60년대는 이촌향도(離村向都)의 시대였다. 가난에 진저리를 치던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엔 상황이 또 달라졌다.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명예퇴직한 직장인들이 농촌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가까운 중소도시나 전원으로 옮겨가는 'J턴 현상'도 뒤따랐다. 요즘은 도시 토박이가 농촌으로 이주하는 'I턴 현상'이 주목받고 있다.

-소통의 방법이 따로 있었나.

"주민들이 농사지은 콩, 고추, 들깨, 옥수수, 감자, 무, 배추, 상추 등을 자동차 트렁크에 가득 싣고 도시에 나가 팔았다. 교통이 불편해 판로 찾기에 애를 먹고 있었던 상황이라 무척 좋아들했다. 물론 도시에 있는 지인들도 신선한 농산물을 직접 공급받으니 반겼다. 거의 심부름 수준이었다. 그렇게 무려 3년간 팔아줬다."

-서서히 벽이 깨졌겠다.

"농사에 관해 문외한이었기에 물정을 몰랐다. 시골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콩의 시세와 메주의 시세가 보이더라. 콩 한말을 팔면 1만 8000원을 받는데 메주로 띄워 팔면 6만원을 받는 것이다. 이때부터 주민들에게 메주를 만들어서 팔자고 했다. 수익이 2~3배 뛰었으니 당연히 환호할 수밖에…. 농사의 재가공은 그래서 중요하다."

-장류사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주민을 위해 잡곡·채소류를 팔아주기만 하다가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없을까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된장 맛이 좋다고 입소문이 났다. 된장 좀 담가 달라는 주문이 밀려들었다. 내친김에 된장을 상품화하기로 결심했다. 첫해 10가마 분량의 된장과 고추장을 선보이자 불과 한 달 만에 동나버렸다. 그렇다고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무슨 문제가 있었나.

"나이 쉰일곱에 사업을 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일손을 놓을 나이에 일을 시작한 셈이니, 제조부터 유통까지 모든 게 고달팠다. 남편은 일절 관여를 안했다. 항아리를 보며 희망을 품다가도, 잠이 들 때쯤이면 절망했다. 이런 나날들이 되풀이됐다. 소중한 사람들과 좋은 먹을거리를 나누겠다는 생각이 없었으면 금세 때려치웠을 것이다. 항아리 10개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400개가 넘는다."
▲ 최명선 궁골된장 대표는 10년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전업주부였지만 지금은 연매출 4억원을 버는 사장님이다. 처음 시작할 때 10개였던 항아리가 지금은 400가 넘는다.

-늦은 나이에 사업수완이 좋았다.

"이왕 시작한 일이면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사람도 도와주고, 도시민에게도 도움을 주자는 뜻에서다. 지금 우리들 수명이 얼마나 길어졌는가. 나이를 계산해보니 70세까지는 거뜬하게 하겠더라."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노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나라다. 그런데 노년기 준비는 OECD국가 중 22위다. 지난해 기준으로 노인 100명 중 26명은 사회적 활동이나 지원이 완전히 끊긴 상태로 고립상태다.

-주원료는 어떻게 조달하나.

"콩은 물 좋고 바람 좋다는 계룡산자락 밭에서 전량 계약 재배로 들여온다. 소금도 서해 곰소항의 천일염만 쓴다. 콩은 장작불로 삶고, 메주는 직접 지은 맥반석 황토방에서 띄운다. 원재료인 콩, 마을 어르신들의 손맛, 물맛이 기막힌 장맛을 낸다고 본다."

―수익은 좀 되는가.

"전업주부에서 연매출 4억원을 버는 사장이 됐으니 성공한 것 아닌가. 직원들도 10명이나 된다. 동네어른들을 정규직 직원으로 채용했다. 매월 120만원을 주고 있으니 용돈벌이가 아니라 당당한 월급벌이다. 이곳도 여타 시골과 마찬가지로 젊은 사람들은 다 떠났다. 물론 토착민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결코 제2의 인생을 뿌리내리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장류시장 규모는 5400억원. 올해엔 된장시장이 커져 6000억원을 넘어선다고 한다.

-장맛의 인기비결은 뭔가.

"제조방법은 어느 곳이나 다 비슷비슷하다. 장맛은 물맛이 반이다. 계룡산 물맛은 정평이 나있다. 옛 맛의 재현을 위해 메주를 짚으로 매단 뒤 맥반석이 깔린 황토방에서 옛 방식 그대로 띄운다. 특히 이곳은 아침부터 하루 종일 햇빛이 잘 드는 산 아래 정남향집이란 장점을 안고 있다. 일체의 화학첨가물, 방부제 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자연의 맛, 고향의 맛, 옛날 어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전하려고 노력한다."

-결국 귀농을 잘했다고 생각하겠다.

"계절마다 흐드러지게 피는 꽃들, 정원의 야생화, 텃밭의 채소들이 한없이 고맙다. 커다란 보름달이 집안에 가득차면 우리부부는 저 달처럼 밝고 환한 노후를 보낼 수 있게 된 점에 행복해한다. 뜰에 핀 꽃들과 이야기하며 음미하는 커피 맛이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내 인생 마지막 남은 혼 역시 항아리에 가득 채워 나갈 각오다."

-농촌에서 새로운 인생 2막을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한마디 해 달라.

"시골은 천지가 자원(資源)이고 천지가 돈이다. 할 일은 많은데 못 찾는 것이다. 얼마든지 도시보다 부자로 살 수 있다. 머리만 쓰면 돈을 무궁무진하게 벌 수 있다는 얘기다. 뚜렷한 생각, 아이템을 찾으라. 물론 처음엔 힘들 것이다. 귀농은 단순히 직업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과 세계관을 혁신하는 일이다."

-그렇게 귀농의 미래가 밝은가.

"외아들(36)도 서른세 살 때 귀농했다. 아니, 귀농시켰다.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었지만 때려치우게 했다. 후계자로 만든 것이다. 우리네 직장인들은 40·50대초만 돼도 잘릴까봐 전전긍긍한다. 그토록 미래에 목숨 걸 바엔 차라리 농촌의 삶이 더 풍요롭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사전교육이 중요하다고 들었다.

"단순한 귀촌(歸村)보다는 보다 적극적인 귀농(歸農)이 돼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치밀한 계획과 준비가 필요하다. 단순히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어보자는 생각만으로 접근하면 십중팔구 실패한다."

그는 여러 곳에서 시시때때로 강연을 한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귀농의 삶, 시골의 행복한 삶을 발효시키기 위해서다. 그의 제2인생이 멋지지 아니한가.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궁골된장 영농조합법인

△2009년 충남도 소상공인 최우수상 △2010년 딸기고구마쌈장·딸기청국장환 특허출원 △2011년 충남형 예비사회적기업 선정 △충남사회적기업 모범사례 발굴대회 우수상 △농림수산식품부 전통식품 인증 △온라인 쇼핑몰 G마켓 진출 △미국·일본·러시아 등 수출 △로컬푸드·농협·생협·백화점 납품 △서천·서산기술센터, 전라도 신안(귀어)군 벤치마킹 △논산시 상월면 대촌3길 23-10(041-734-8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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