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재필의 feel]
사라져가는 서민들의 사랑방 다방(茶房)을 가다
길거리 커피자판기·커피믹스에 밀려 사양길 접어들어
5·16군사정권땐 ‘커피는 사치품’이라며 한때 금지령
여자종업원들 짓궂은 손님때문에 고생하다 대부분 전업
대형커피전문점 마구 생기다보면 언젠가는 위기 올것
커피원가 싼데 한잔에 4000~5000원 받는건 ‘폭리’

▲ 인터뷰를 했던 마담쪽에서 철저히 익명을 요구해와 다방 내부 전체를 찍을 수 없었다.
뭔가 이상하다. 모두들 3000원짜리 짜장면을 먹고 5000원짜리 커피를 마시고 있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 중세유럽 때 이교도의 음료, 악마의 유혹, 사악한 검은 물로 불렸던 ‘커피’가 일상에 젖어들면서 최대의 호황기를 맞고 있다. 스타벅스, 할리스커피, 엔제리너스, 카페베네, 투썸플레이스, 커피빈, 파스쿠치, 카페아티지아노, 탐앤탐스 등 커피전문점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그렇다면 다방(茶房)들은 어디로 숨었을까. 원도심 역전을 지나가다 아주 오래된 다방을 발견했다. 오래전부터 잠재돼있던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뷰는 즉흥적으로 이뤄졌다. 다방 이름과 인터뷰 대상자의 이름은 부득이하게 밝히지 않는다. 물론 초상권과 퍼블리시티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딱 봐도 장사가 안 된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목 좋은 역전(驛前)이라 뜨내기손님들이 바글바글했다. 보다시피 지금은 이렇다."

-수지타산이 안 맞을 텐데,

"몇 번이고 접을까했지만 단골 때문에 그냥저냥 푼돈벌이만 하고 있다. 손님들도 대개 70대 이상의 어른들뿐이다. 젊은 사람들이 다방에 오겠는가."

-커피전문점들이 경쟁적으로 창업하고 있다.

"그렇게 막 생기면 언젠가는 위기가 올 거다. 적당히 있어야, 같이 먹고살 수 있는 것 아닌가. 다방을 밀어낸 카페(커피숍)의 전성시대도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다방이 몰락한 결정적인 원인은 뭔가.

"1970년대 '길다방(커피자동판매기)'이 생기면서부터다. 다방을 애써 가지 않아도 길거리서 빼서 마실 수 있으니 얼마나 간편해진 건가. 그래도 80년대까지는 버텨냈는데 90년대 카페(커피숍)가 폭발적으로 생겨나면서 위기가 왔다. 카페는 프림과 설탕, 커피라는 단순 메뉴 구조를 과감하게 버렸다. 젊은이들의 구미에 맞게 실내디자인을 바꾸고 음악도 트렌드에 맞췄다. 이후 '홈다방(커피믹스)'이 생기면서 다방의 역할은 크게 위축됐다."

1978년 4월, 정부는 커피 수입의 자유화를 최종확정했다. 78년 1400만 달러였던 커피 수입액은 이듬해 3100만 달러로 두 배 이상 뛰었다. 커피 자동판매기도 1979년까지 전국에 4000여대가 설치됐고, 하루에 100만잔 이상을 판매했다. 이후 1985년까지 15만대가 보급됐다.

-그래도 마담과 레지라는 여성적 섹슈얼리티를 내세우면서 명맥을 유지해오지 않았는가.

"다방은 커피만 가지고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아가씨(레지·종업원)를 두고 장사했다."

-당시의 상황을 좀 더….

"가장 큰 고민은 티켓다방으로 갈 건지 아닌 지였다. 티켓다방을 하면 돈은 많이 벌 수 있었다. 그렇다고 보통 다방으로 하자니 돈벌이는 물론이고 아가씨조차 구하기 힘들었다. 이후 조그마한 도시나 농촌에서 시작된 티켓영업이 매매춘·퇴폐로 옮아갔다.”(티켓영업은 원래 다방 여종업원들이 차 배달을 나가면서 손님과 시간단위로 말동무 등 데이트를 해주고 대가를 받는 것을 의미했으나 변질됐다)

몇몇 도시를 돌고 돌아왔을 어느 레지의 서글픈 인생이력과 퇴폐적인 징후들, 과하게 떡칠한 화장, 붉게 칠한 매니큐어, 허벅지만 살짝 가린 미니스커트와 가슴과 가슴 사이에 음험하게 패인 굴곡들, 입속에 든 껌으로 딱딱 소리를 내며 구개음을 울리던 그 입술이 얼마나 기묘한 슬픔이었던가. 오늘의 운세를 숨겨놓은 운명의 껌통을 빙빙 돌리는 백수들 곁에서 시답잖은 농담 따먹기로 매상을 올려야했던 아가씨, 배불뚝이 사내들의 오후 한때를 야한 농담으로 때우던 아가씨들. 레지들은 아침8시서 밤9시까지 하루 13시간의 노동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괴로웠던 것은 스쿠터를 타고 커피 배달하는 모습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봤다는 점이다.

-(솔직히 말해서) 다방아가씨들의 생활은 어땠나. 중노동에 무(無)대접도 받았잖은가.

"대개 마담들은 긴 한복을 입었고 아가씨들은 짧은 미니를 입었다. 성희롱이라는 단어도 없던 그 당시, 나이든 중년 신사가 슬쩍 엉덩이를 쳐도 없던 일로 하고 지나던 때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라져갔지만, 기억에는 생생하다. (그런데) 그렇게 친절한 아가씨들도 바람이 나거나, 바람이 들면 당일 아침에야 사장에게 사표 메시지를 휙 날리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인력수급에 애를 먹었다.”

1896년 고종은 아관 파천이후 처음으로 커피를 접했다. 커피 시중을 들었던 독일계 러시아 여인 손탁(Sontag·웨벨 러시아 공사의 처형)은 1902년 서울 정동에 손탁 호텔을 세우고 처음으로 커피를 만들어 팔았다. 이 시기 커피는 일본인과 특수 계층들만이 맛볼 수 있는 귀한 음료였다.

▲ 80년대까지 서민들의 사랑방, 맞선·데이트장소로 인기많았던 다방은 커피자판기와 커피믹스 출현에 위기를 맞았다. 더구나 요즘은 커피전문점들까지 가세해 악화일로다.
-모닝커피가 유명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한국인만의 커피가 모닝커피다. 뜨거운 커피에 날계란 노른자를 넣어 참기름을 한두 방울 떨어뜨려 휘휘 저어마시는 것인데 꽤나 인기가 좋았다. 전날 술이 과했던 사람은 '위티'나 '하이볼'을 주문했다. 위티는 '위스키+티, 하이볼은 위스키+소다수 음료다. 아침을 걸렀거나 속이 편치 않은 이에겐 충분한 해장거리가 됐다. 집의 부인에겐 말 않던 속사정도 마담에겐 솔직히 털어놓는 일이 적잖았다."

-커피금지령도 있었다는데.

"1960년대 초 커피가 공공의 적 취급을 받은 적이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80달러대로 가나와 함께 최빈국에 속했던 때다. 5·16군사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은 커피를 사실상 금지했다. 수입에만 의존하는 커피가 사치스럽다는 이유에서다. 다방에서 몰래 커피를 팔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커피 대용품으로 국산 커피가 나왔지만 맛이 없어 외면당했고, 커피는 귀물 중에 귀물이 되기도 했다. 이후에는 코코아, 홍차 등을 파는 것도 금지됐다. 커피를 못 파니 콩가루를 태워서 만든 콩피 같은 게 나오기도 했다."

-다방의 강점은 무엇이었나.

"80년대를 넘어서며 한국경제는 빠르게 컸다. 누구나 먹고살만해진 거다. 속된 말로 죽치고 앉아 노닥거리는 재미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그 이면엔 임금상승이 동반됐고, 수지를 맞추기 위해 노동의 강도가 세졌다. 노닥거리지 말고 일을 하라는 거다."

다방은 일이천 원만 투자하면 아늑한 자리에 앉아 오랫동안 죽치기 좋았다. 바깥에선 건설하고 삽질하는 역군들의 아우성과 땀으로 난리통이었지만 다방 문을 밀고 들어오는 순간, 그들은 참으로 한가하고 하릴없는(망중한) 귀족이 됐다.

-요즘 커피 가격을 어떻게 보나.


"젊은 사람들이야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50·60대만 돼도 저항감을 느낄 것이다. 그때는 갈비탕 한 그릇이 300원이면 커피 한 잔은 100원 같은, 공식 아닌 공식이 있었다. 원가로 보자면 커피는 많이 남는 장사다. 우린 죽으나 사나 2000원만 받는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에 따르면 커피 한잔의 원가는 200~770원 선. 유명 커피점 판매가의 5%도 안 된다. 커피전문점에서의 커피 한잔 평균 가격은 에스프레소 3280원, 아메리카노 4000~4500원이다. 200원 원가의 에스프레소가 뜨거운 물을 타면 4000원이 되고 얼음 넣어 차게 만들어 내면 5000원이 되는 게 현실이다. 미국은 2400원대, 일본은 3600원대다.

-커피 종류만 1만 6000종이 넘는다고 한다. 커피소비량도 1인당 연간 670잔으로 세계 35위라는데.

"커피가 무슨 보약인가. 뭐든지 적당히 하는 게 좋다. 말이 나와서 그런데, 다방은 죽자사자하고 커피를 마시던 곳이 아니다. 길거리사랑방이었고 서민들의 대화 공간이었다.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거리의 응접실, 만인의 사무실, 문학·예술의 아지트, 맞선과 데이트의 중심, 어른들의 사랑방이자 취업준비생의 공부방, 직장인의 휴게실, 실업자의 연락처, 회사 없는 사장님의 둥지였다."

해방이후 매년 늘어나던 다방수는 1975년 허가지역제한이 풀린 이래 급증했으나 1997년 외환위기(IMF) 사태 후엔 9000개 수준까지 감소했다. 이젠 변두리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별다방'이라고 들어봤는가. 미국의 대표적 커피체인 스타벅스를 말한다. 한국에서 한해 동안 1700억원을 번다고 하더라.

"그렇게 많이 벌면 물론 한국에도 도움을 많이 주겠지. 길다방, 별다방도 좋지만 꽃다방이 최고였는데…."

새를 보고 허공의 깊이를 가늠하듯, 굳이 꿈꾸지 말아야할 과거를 유영하며 추억에 빠져드는 건 꽤 괜찮은 호사였다. 그 가격은 2000원이면 족했다.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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