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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과학수사연구소 이봉우 소장 “죽은 자는 몸이 곧 유서 … 그래서 그들에게 말을 겁니다”

[나재필의 feel]
부검은 망자와의 마지막 대화…
원통하고 억울한 구석 있어선 안돼
법의학자 3명이 한달평균 70건 부검
어려운 일이지만 사명감때문에 보람
법의학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일뿐
국내 과학수사 수준급 … 응원해달라

나재필 기자 najepil@cctoday.co.kr 2015년 04월 01일 수요일 제10면     승인시간 : 2015년 03월 31일 20시 25분
보령 대천천변 산책로 풀밭에 50대 남녀가 쓰러진 채 발견됐다. 여자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 남자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사고 현장에는 말린 복어(복어 알)와 소주가 있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이들의 부검을 의뢰했다.

다음날, 나는 '복어사건'과는 별개로 대전과학수사연구소를 찾았다. 이미 일주일 전에 취재약속을 해놓았기 때문이다. 법의학계의 베테랑 이봉우 대전과학수사연구소장을 만났다. 봄볕이 유난히 좋은 날이었다.
▲ 나재필 편집부국장(오른쪽)이 이봉우 대전과학수사연구소장을 만나 법의학에 대해 질의하고 있다.

-진실을 밝히는 과학의 힘, 호민조판(護民助判·국민을 보호하고 판단을 돕는다)'이라는 슬로건이 국과수의 역할을 잘 압축한 것 같다.

"그렇다. 주검(사체)은 결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죽은 자는 몸으로 유서를 남긴다. 때문에 어떠한 경우라도 억울한 죽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 국과수는 사체 부검이나 유전자분석 등을 통해 사인을 규명하고 신원을 확인한다. 또 미궁에 빠질 수 있는 의문사나 의혹이 있는 사건을 과학으로 풀어 진실을 밝힌다."

-법의학이라는 개념이 모호하다.

"법의학은 법의병리학, 법의혈청학, 임상법의학으로 나눌 수 있다. 법의병리학이란 병사(病死) 이외의 모든 죽음, 즉 평소에 건강하게 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예기치 않게 사망하는 경우 부검을 실시해 사인(死因), 사후 경과시간, 치사방법, 사용흉기 등을 규명한다. 법의혈청학(과학수사학)은 혈액·타액·정액·질액·모발·치아·조직 등을 혈액검사로 식별하거나 범인을 찾는다. 임상법의학은 의료사고가 일어난 경우에 질병과 사인(死因)과의 관계, 의료행위와 사인과의 관계를 분석해 과실 유무를 판단한다."

-(뭔 소리인지) 어렵다.

"죽음의 근원을 밝혀주는 것이다. 범인이 '나는 사건 현장에 없었다'고 거짓말을 한다면 '그가 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내는 것이다. 죽은 사람의 대답을 들을 수는 없으니 용의자의 거짓을 하나씩 벗겨나가는 것으로 보면 된다."

-법의관이 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나.

"의대 재학시절, 국과수에 있는 선배를 따라 거제도 사건현장에 간 적이 있다. 택시운전사 사망사건이었는데, 사체를 본 선배가 '(발로) 목을 밟아 죽인 것으로 보인다'며 단번에 감정(鑑定)했다. 신기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끌렸던 것 같다."

-법의학자(국가법의관)는 몇 명이나 되나.

"현재 23명인데 대학병원 소속(촉탁의)까지 합치면 50명 안팎이다. 정부가 앞으로 100여명까지 늘린다고 하더라. 대전수사연구소의 경우 3명이다."

-국과수 하면 부검(剖檢)이 떠오른다.

"부검은 법의학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다. 우리나라 변사체 부검률은 선진국보다 낮다. 선진국은 30%에 육박하지만 우리는 10%도 안 된다. 국민의 마지막 인권인 검시(檢視)체제가 부실해 원인미상 사망률도 10%에 달한다."

-부검은 몇 건 정도 하나.

"일 년에 700건 정도 한다. 한 달 평균 70건이다. 오늘도 다섯 구가 들어왔다. 우리나라는 대개 3일장(葬)을 하기 때문에 대부분 아침 8시30분 이전에 부검한다. 얼른 끝내고 장례를 치러야하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주검을 목도했을 것이다. 부검할 땐 어떤 생각이 드나.

"부검은 죽음의 진실을 밝혀내는 일이다. 망자(亡者)와 마지막으로 얘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 책임감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작은 흔적이라도 잘 살펴 억울함과 원통함이 없도록 신경을 쓴다. 죽은 자는 거짓말을 못한다. 오직 몸에 남은 다양한 흔적들로 진실만을 얘기한다. 거짓을 말하는 것은 늘 살아있는 사람이다. 반면 죽은 사람은 말은 하지 못해도 진실하다. 죽은 자는 자신의 사인(死因)을 입이 아닌 몸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1922년 이집트의 소년 파라오 투탕카멘의 무덤이 발굴됐다. 독일연구팀은 투탕카멘의 유전자를 분석하고 컴퓨터 단층촬영(CT) 검사를 동원해 미라를 부검했다. 그리고 죽음의 원인이 '유전적 질환으로 면역체계가 약해진 상태에서 다리 골절상을 입고 말라리아에 걸려 숨졌다'는 것을 밝혀냈다. 무려 3362년 만에 사인이 밝혀진 것이다.

-부검은 어떻게 진행되나.

▲ 이봉우 대전과학연구소장은 “죽은 자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오직 몸에 남은 다양한 흔적들로 진실을 얘기한다”며 원통한 죽음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유명환 기자
"머리서 발끝까지 눈으로 샅샅이 살피는 검안부터 시작한다. 냄새도 일일이 맡아본다. 그 다음 메스로 가슴에서 배 아래까지를 가른 뒤 장기를 떼어내 무게를 잰다. 출혈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마지막으로 머리에서 뇌를 떼어내 경막과 두개골의 상태를 보는데 이는 충격을 살피기 위함이다. 타살 흔적을 찾으려 근육 등에 남아 있는 상처 부위를 보고, 다양한 화학반응 검사와 생물학적 검사를 병행한다. 모든 검사가 끝나면 장기나 뼈를 제자리에 놓고 다시 꿰맨다."

-시간은 보통 얼마나 걸리나.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2시간이다. 2시간을 넘기는 경우엔 환풍기를 아무리 돌려대도 악취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부검은 시신을 훼손하는 행위라는 인식이 강하다. 유족들은 차가운 스테인리스 침대에 시신이 눕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미 죽은 자에게 칼을 대기 때문에 두 번 죽인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사건·사고사가 아니라면 굳이 부검을 해야 하나.

"사망신고를 할 때는 의사의 진단서나 사후 검안서가 필요한데 의사면허만 있으면 누구나 발급할 수 있다. 일부 의사들의 경우 장례업자들이 시키는 대로 검안서를 작성해주고 용돈을 번다. 그런 의사들이 시신의 상태를 제대로 보겠는가. 자연사인지 타살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장례를 치르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유병언 사건 이후 국민들 의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가령, 자살한 시체는 어떤 모습인가.

"죽겠다는 결심을 해도 자해 순간 망설이게 돼있다. 그래서 '주저흔'이 남는다. 타살인 경우에는 피해자 상처의 길이가 칼의 폭보다 길다. 누구라도 칼을 피하려 움직이고, 찔린 뒤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때문이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달라.

"물에 빠져죽은 시신은 부패가 심하다. 일단 물에 가라앉으면 몸이 탱탱 불어 가스가 찬다. 그 가스 때문에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질식해 죽은 사람은 눈꺼풀 사이 좁쌀 같은 반점이 남고, 화재현장에서 일산화탄소를 들이마시고 사망한 사람은 손톱이 선홍색을 띤다. 넘어지거나 맞았을 때 생기는 멍도 살아 있다는 증거다. 이미 사망한 시신에는 아무리 힘을 가해도 멍이 생기지 않는다. 흉기로 시신을 훼손해도 피가 잘 나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완전 범죄란 존재할까.

"아무리 얼굴을 가려도 숨길 수 없는 것이 흔적이다.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완전범죄를 꿈꾸며 범행의 흔적을 지우려 애쓰지만 모든 범죄에는 흔적이 남게 돼있다."

-법의학 드라마와 현실의 차이는.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우린 폼을 잡는 셜록홈스가 아니다. 국과수는 변사체의 사인(死因)만 감정하는 기관이 아니다. 마약, 독물, 화학분석, 화재 감정, 교통사고, 변사체 사인 감정, 유전자 분석, 범죄심리 분석, 문서·영상분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죽음의 이유를 밝힌다."

-과학수사의 단서는 어떤 것이 있나.

"머리카락, 음모(陰毛), 침, 대소변, 땀도 단서다. 사건현장 주변에서 담배꽁초를 수거해 DNA분석을 하는 것도 용의자의 흔적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과학수사는 어느 수준인가.

"2004년 인도네시아에 쓰나미가 덮쳤을 때 자국민 시신을 모두 찾은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유전자분석능력 때문이다. 유전자 분석 결과를 토대로 죽은 두 갓난아기의 부모를 밝혀냈던 2006년 서울 프랑스 영아 유기사건은 그 나라 언론조차 혀를 내둘렀다. 뉴질랜드 지진 참사 때도 수상(首相)이 우리나라 국과수에 지원을 요청했다. 치아를 보고 숨진 사람들의 국적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밝혀냈다. 모발에서 마약류를 검출하는 기술도 독보적이다."

-직업병은 없나. 꿈자리가 뒤숭숭하다든지.

"신참 때는 가위에 눌리기도 했지만 이젠 무덤덤하다. 그런 거 계속 생각하면 이 일을 못한다. 바로바로 떨쳐버린다. 다만 예전에 있었던 부녀(父女) 화재사고는 가끔씩 생각난다. 참혹했던 현장에 온통 라면만 쌓여있더라. 그들의 생활이 어땠을까 연상됐다. 찡했다. 부검 대상자 대부분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안타깝다."

-현장에 법의관이 동행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론은 그렇지만 현실적으론 그럴만한 인력이 없다. 우리나라는 1년에 25만명 정도 사망한다. 병원에서 15만명 정도 죽고, 나머지 10만명은 변사한다. 그런데 이 10만명의 죽음을 제대로 다루라는 법령조차 없다. 사건 현장에 경찰이 달려가 검안의(檢眼醫) 불러 간단한 의견을 청취한 다음에 검사에게 보고하고, 판사가 부검 영장을 발부한다. 이러다보니 가끔 사건현장이 훼손되기도 한다."

-감정서는 어떻게 작성되는가.

"절대 소설을 쓰지 않는다.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욕심을 내는 순간 무리하게 소설을 쓰게 된다. 예전엔 최종 감정서 발급까지 3~6주나 걸렸다. 하지만 이젠 속전속결로 처리한다. 100명이 넘는 경찰관이 동원돼 불필요한 탐문수사를 하는 걸 막을 수 있다. 수사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얘기다. 감정지연 제로화에 성공한 것이다."

-감정지연 제로화라니.

"서중석 국과수 현 원장이 대전분원을 맡았을 때부터 365일 검안을 실시했다. 죽음에 토요일, 일요일이 있을 수 없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외압이 있는 경우도 있겠다.

"없다. 감정이나 부검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떤 코멘트도 해서는 안 되는 게 국과수 불문율이다. 국과수는 위의 지시에 의해 움직이는 행정기관이 아니다.”

-법의관을 희망하는 후진들에게 한마디.

"과거에는 먹고살기 바빠 남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지만 이제 우리 사회도 한 개인의 아픔이나 억울함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풍토가 됐다. 학문적으로나 직업적으로도 과학수사 영역이 더욱 넓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도전해보라."

-가장 큰 애로는 무엇인가.

"하는 일에 비해 예산과 인력이 절대 부족하다는 점이다. 시설도 협소하다. 선진국은 과학수사에 필요한 장비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차츰 좋아질 거다."

-그럴 만도 하겠다. 현재 대전연구소의 경우 대전·세종·충북·충남·경기·전북·경남·경북도 등 7개시·도에 걸쳐 42개 경찰서를 관할하고 있잖은가.

"그렇다."



-국과수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아주 냉혹한 곳이다. 너무 어렵고 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매일 어두운 것만 보면서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 공무(公務)라는 사명감이 없다면 힘들다."

인터뷰를 끝내고 부검실로 들어갔다. 부검대 위에 한 여자의 시신이 눕혀져 있었다. 두개골이 절단돼있고 목과 복부가 열려있었다. 검붉은 속살이 비쳤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이 쳐졌다. 몸 안 가득 한겨울 삭풍이 불어오는 듯했다. 동행한 경찰(정양신 경정·국과수 운영지원과장)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전날 복어를 먹고 숨진 여자라고 했다. 부검실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동행했던 후배 기자에게 모처럼 낮술을 청했다.

▶이봉우 대전과학수사연구소장=창원고 졸업,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부산대학교 의학과 박사, 국과수 법의학과 의무사무관 임용(법의관), 국과수 중부분소 법의학과장, 국과수 법의학과 기술서기관, 국과수 법의학과장, 국과수 서부분소장, 국과수 법의관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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