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장수상회'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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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연합뉴스

작년 말 단편 영화 '민우씨 오는 날'을 선보이긴 했지만 강제규(53) 감독은 그동안 국내 첫 블록버스터 영화인 '쉬리'(1998)를 비롯해 '태극기 휘날리며'(2004), '마이웨이'(2011) 등 막대한 규모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이른바 대작 영화를 선보여왔다. 

강 감독이 '마이웨이' 이후 만 3년 만에 들고 나타난 영화 '장수상회'(4월 9일 개봉)는 그런 점에서 꽤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장수상회'는 남북 이데올로기 대립도, 전쟁 장면도 없는, 어찌 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 주변의 소소한 얘기이기 때문이다.

27일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강 감독은 "사람에 집중해서 찍을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전 작품에서는 연기도 주인공이고 파편도 주인공이고 심지어 탱크도 주인공이었어요. 탱크가 가다 서면 연기자가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NG가 나니까요. 그런 데에 대한 답답함이 있었죠. 살 냄새가 나고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고 사람의 눈빛만 보고 영화를 찍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정말 많았어요." 

'태극기 휘날리며'를 촬영할 때부터 그런 생각은 강하게 들었다고 했다. 매일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고, 그나마도 촬영장에 날리는 먼지 때문에 모래알을 씹기 일쑤였다. 

강 감독은 "도시에서 찍고 집에서 출퇴근하면서 찍고 싶었다"며 "그동안 기회가 없었는데 '장수상회' 시나리오를 보고 내가 기다리던 살 맞대고 눈 맞추며 찍을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장수상회'는 70세 연애 초보 '성칠'(박근형)과 그의 마음을 흔든 꽃집 여인 '금님'(윤여정), 그리고 이들의 마지막 연애를 응원하는 동네 사람들에 대한 얘기다. 

일부러 햇살 좋은 가을로 촬영 시점을 택해 자연광을 최대한 이용해 밝고 화사한 느낌을 스크린에 담아 낸 강 감독은 이 영화를 노란색에 비유했다. 

"노을의 느낌일 수도 있고 일출의 느낌일 수도 있죠. 색이 바랠 때도 그렇고. 따뜻하면서도 어떨 때는 조금 슬픈, 양날을 가진 색이잖아요."

"인간이 가진 따뜻함을 화면 전체에 표출해내는 데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잘해낸 것 같다"고 자평한 강 감독은 '장수상회'에 대해 "트렌드를 좇아가지 않고 본연의 미덕과 장점이 분명한 영화"라고 설명했다.

"사실 처음에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양념이 덜된 것 같았어요. 센 캐릭터나 복잡하게 얽힌 사건 등도 생각했죠. 하지만 그건 '장수상회'가 아니더라고요. 싱거우면 싱거운 대로, 단출하면 단출한 대로, 착하면 착한 대로 가는 게 이 영화가 가진 본질이자 미덕이죠. 이 영화가 존재할만한 가치와 미덕이 있는데 여기에 조미해서 소위 나쁜 영화의 틀거리를 갖지 말자고 다짐했죠. 욕심내지 말자고요."

강 감독은 "기교를 가미해 비틀 수는 있지만 그게 오히려 뒤에 오는 감동의 파장을 줄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싱겁고 무덤덤하고 담담함이 여운과 감동을 더 증폭시킬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결론을 내리고는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덕분에 성칠과 금님의 서툴지만 알콩달콩한 연애를 그리며 소소한 웃음을 전하는 영화는 성칠만 몰랐던 비밀이 밝혀지는 극 후반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감동을 선사한다. 

강 감독은 "영화는 다채로운 빛깔을 가진 인간처럼 개성과 성격을 가진 것이 존재의 이유이고 가치인데 트렌드를 따라 관객 맞춤형 영화가 양산되는 현실에 대해 아쉬움이 있다"며 "본질의 미덕과 가치를 믿어야 다양한 영화가 나올 수 있고 관객도 풍성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이웨이'의 흥행 참패 이후 숨 고르기를 하던 강 감독이 '장수상회' 연출을 흔쾌히 받아들인 것은 가족 때문이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는 3년 전 세상을 떠났고 1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는 최근 들어 부쩍 그 증세가 심해졌다고 했다.

강 감독은 "성칠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가 떠올라 혼자 시큰할 때가 꽤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를 하면서 사랑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어요. 결국 남녀 간의 사랑도 가족의 사랑을 통해 완성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남녀 두 사람의 사랑은 불완전하지만 톱니바퀴처럼 맞아서 밀도와 깊이와 진정한 완성도를 갖는 사랑은 가족 간의 사랑을 통해 영글어지고 하나가 되는 게 아닌가 하고요."

강 감독은 "'장수상회'가 서로 이해하고 소통할 준비를 하고 관심을 두는 데에 일조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할리우드 진출 등의 이유로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작품 간격이 꽤 컸던 그지만 차기작은 조금 더 빨리 만나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내년 봄에 촬영이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작품이 하나 있어요. 제작비 규모는 좀 커요. 전쟁이나 액션은 아니지만 다른 시대를 그리는 작품이라…. 신명 나는 영화에요. 미국에서 SF 한다고 4년을 보냈으니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영화를 만들어야죠. (웃음)"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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