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김일순 경제2팀장

일본에서 소나무재선충병이 처음 발생한 것은 1905년 규수의 나가사키다. 항구도시인 나가사키를 통해 미국에서 들여온 나무박스로 소나무재선충병이 유입된 것이다. 당시는 나무로 불을 때던 시기라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려 죽은 나무가 곧바로 땔나무로 쓰여 감염이 널리 확산하지는 않았다. 이어 1920년대 항구도시인 효고현 아이오이에서 또 다시 재선충병이 발생했는데, 이번에도 미국에서 온 화물선에 재선충병에 감염된 나무가 실려 온 것이 발생원인으로 추정됐다.

이후 1930년대는 교토와 나카사키까지 감염이 확산했고, 1940년대에는 전 국토가 전쟁터로 변하면서 감염된 나무들이 아무런 통제 없이 일본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이로 인해 전국적으로 감염이 확산했지만, 소나무가 병에 걸려 고사하게 된 정확한 이유는 일본 정부에서도 알지 못했다. 재선충이 직접적인 발병 요인이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규명된 것은 한참 후인 1970년대다.

1㎜ 크기의 재선충이 소나무에 침입해 빠른 속도로 증식하면서 수분과 양분의 이동통로를 막아 말라 죽게 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재선충병은 이미 걷잗을 수 없이 확산돼 북쪽에 위치한 훗카이도를 제외하고 일본 전역에 퍼진 상태다.

1900년대 176㏊에 달했던 소나무숲 면적이 현재는 75㏊까지 줄어드는 막대한 피해를 본 것이다. 일본은 현재 국립공원과 고궁, 문화재 지역 등 반드시 지켜야 할 소나무를 사수하는 ‘선택과 집중’에 따른 현실적인 방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사실상 방제를 포기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우리나라는 1988년 10월 부산 금정산에서 재선충병이 처음 발생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항구도시인 부산을 통해 재선충병이 유입된 것이다. 이후 지난 1월까지 전국 74개 시·군으로 감염이 확산했다. 재선충병 확산을 막기 위한 방제전략 수립에 일본의 사례는 좋은 참조가 된다.

일본에서 유일하게 재선충병 확산 방지에 성공한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1950~60년대로 전쟁 패망으로 미군이 통치하던 시절로 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 이동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는데 규율이 엄격하게 적용돼 방제에 성공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는 부산에서 재선충병이 처음 발생한 이후 다른 지역 확산 방지에 나섰지만 결국 막지 못했다.

산림당국은 당시 여론에 밀려 항공방제와 소나무 이동 금지 등의 방제를 엄격하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직도 아쉬워하고 있다. 그때는 재선충병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았고, 항공방제를 둘러싼 유해성 논란까지 제기돼 적극적인 방제책을 밀어붙이지 못해 국내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기회를 실기(失機) 했기 때문이다.

재선충은 매개 곤충을 타고 다른 소나무로 이동해 감염이 확산하거나 감염된 소나무가 목재로 가공돼 다른 지역으로 옮겨지면서 병이 퍼져 나간다.

산림청은 국내 재선충병 확산의 절반은 이른바 ‘인재(人災)’로 감염된 목재 운반 등에 따른 인위적인 요인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산림청이 소나무류 불법 이동에 대한 특별단속 등을 통해 감염목 무단이동 방지에 총력을 경주하고 있다.

산을 자주 찾는 시기가 돌아왔다. 소나무는 국내 산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육박하며 상징적인 의미도 크다. 자칫 작은 부주의로 산림이 황폐해질 수 있는 만큼 재선충병이 나와는 무관한 것으로 경시하지 말고 각별한 주의와 관심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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