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이심훈 충남교육청 학교정책과장

오랜 가뭄으로 목마른 대지에 봄비가 내렸다. 전국으로 번지던 산불 소식도 잦아들게 하고, 마른 풀들 틈새에서 새싹이 돋아나게 하는 단비다. 절기에 맞게 내리는 비와 화답하며 파릇파릇 물이 오르는 봄동이 신바람 났다. 가만히 헤집어 보니 노랑나비 흰나비를 꿈꾸며 꽃대를 하늘 쪽으로 밀어올리고 있다. 모진 겨울 추위 속에서도 다가올 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준비하고 있었던 봄동을 바라보며 요즈음 열풍이 불고 있는 인문학을 생각해 본다.

인문학은 언어, 문학, 역사, 철학 등 인간의 가치를 탐구하거나 삶의 다양한 표현 활동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은 사람의 삶에 대한 고찰이기 때문에 과거를 되새기고 현재를 직시하며 다가올 미래를 궁구함에 있어 대자연과 소통하는 관계를 생각하는 세상 읽기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봄동 지난 가을 뿌리 내려 언 땅에서 춥고 긴 겨울을 견디고, 풋풋한 이름으로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봄의 환희를 만끽하는 풀꽃들의 삶의 내면을 관조하는 것도 인문학이라 할 것이다.

인문학 교육은 미래 사회의 주역이 될 학생들이 행복하게 살 방법에 대한 그림을 그려보게 하는 일이라 생각된다. 장차 대자연과 어우러진 한 사람으로 행복한 삶의 밑그림을 학생들이 그릴 수 있도록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가 공동의 관심으로 소통하고 관여해야 한다. 봄동 한 포기가 싱그럽게 자라기 위해 보드라운 흙의 가슴, 아침 안개로 어루만지는 대기, 적절한 때 아우르는 봄비처럼 사회의 관심이 결집되었듯이, 인문학 교육은 총체적인 삶의 방식을 오감으로 체득하고 궁리해 보는 과정이어야 한다.

아이들이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때로는 기다려줘야 장차 그들의 삶이 풍요로워질 것이다. 초고속 정보화와 세계화를 추구하는 사회에 피할 수 없는 경쟁을 인정할 수밖에 없더라도, 경쟁하는 방식의 변화를 가정, 학교, 사회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봄 들녘에서 돋아나는 푸새들도 나름대로 경쟁을 하면서 자란다. 다만 경쟁하는 방식이 우리 아이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인문학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 배려와 나눔, 배움의 의미, 소통과 공감 등 대자연 속의 일부로 살아가는 소중한 존재를 아이들 스스로 자신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쁜 꽃을 피우려면 네가 거름이 돼 줘야 한단다" 강아지똥이 민들레를 힘껏 껴안아 버리자 민들레 싹은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강아지똥’이라는 책을 도서관에서만 읽어보는 것은 단순한 인문학에의 접근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강아지똥도 알고 보면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도서관을 벗어나 오감으로 체득하는 독서 동기를 부여할수록 인문학 교육의 효과는 배가된다. 가족과 함께 비 내린 들녘에서 혹은 거리에서 강아지똥이나 민들레의 삶을 찾아보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다만 절기를 느껴보고, 때로는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며 배움의 중심에 아이들을 두는 생각의 전환이 있어야 비로소 보인다는 것이다.

빗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귀 기울이면서 음악을, 봄비 속 안개 풍광이 얼마나 고즈넉한지 바라보며 미술을, 싱그럽게 춤추는 풀꽃들의 춤사위에서 체육을, 저희들끼리 옹알거리는 봄 과수원에서 문학을 오감으로 체득하는 것이 인문학과 교육의 만남이어야 한다. 강아지똥이 민들레의 가슴으로 젖어들어야 예쁜 꽃이 피듯, 민들레 씨앗처럼 멀리 날아갈 삶에 대한 그림을 신바람 나게 그릴 마당이 가정, 학교, 사회가 함께하는 인문학 교육이면 더욱 좋겠다. 너른 내포들녘에 내리는 봄비 속으로 장항선 기차가 서두르지 않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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